USC 도서관에서 발견된 40년전 남가주 한인들의 기록인 ‘한인록’을 발행한 주인공이 뉴욕에 살고 있는 변천수(사진)씨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본보(4월 29일자 A2면)에 보도된 기사를 읽고 한동안 묻어 버렸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로 오던 중 태평양 한가운데서 5.16 군사혁명을 맞았다. 신문사는 군사정권 하에 놓이변씨는 서울신문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아 해운공사 배를 타고 미국으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왔지만 변씨는 월급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막노동, 청소 등 여러 가지 일을 닥치는 대로 하던 중 동지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당시, 남가주 한인들은 이승만 박사를 추종하는 동지회와 도산 안창호 선생을 추종하는 국민회로 갈려 분열이 심화된 때였다. 그 때, 변씨가 사업으로 성공한 거부 김호씨를 설득, 한인들이 싸우지 않고 화합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자고 제의하여 1963년 거금 5만 달러로 한인 커뮤니티 센터(사진)를 구입하고, 이어 64년 박학선씨의 도움으로 한인록을 제작하게 된 것.
"당시 한인들의 주소록을 작성하기 위하여 편지를 보내고, 가가호호 방문해서 직접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았다. 이름을 표기하는데 영어 발음에 근접하게 표기하려고 ‘안 루이’라는 표기도 썼다"며 "한글 활자가 없어 한글 원고와 1,000여명이나 되는 이름을 밤새 일일이 손으로 써서 인쇄했을 땐 고생스럽고 어려웠지만 돌이켜보니 당시 한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남게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소감을 말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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