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밤 9시께였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편집국의 고요를 깨뜨린다. 외부 취재가 없어 통신사 뉴스 등을 모니터하며 조용히 야근을 하던 때였다.
LA 경찰국 공보관이었다. “2살 가량 된 한인 여아를 경찰이 보호중이다. 어머니가 8일 전 베이비시터 할머니에게 맡긴 후 찾아가지 않는다”고 그는 전했다. 신문에 사진을 실어 아이의 부모를 찾는 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서둘러 사진 기자와 램파트 경찰서로 달려갔다. “2살배기를 버리다니, 신생아를 유기한 사례는 많이 들었지만….” 지레짐작과 함께 연신 혀를 차며.
경찰서에 도착해 아이를 만났다. 두 살 정도로 아주 예쁜 얼굴이었다. 부모와의 생이별 때문이었는지 풀이 죽어 있었다. 영어와 한국어로 여러 번 이름을 물어보았으나 도통 대답이 없다. 이름 정도는 말할 수 있을 터인데 언어발달이 조금 느린가 하며 포기했다.
그 자리에 나온 사회복지국 직원은 “일단 위탁가정에 넘겨진 뒤 부모 찾기와 입양 절차를 병행하게 된다”는 안타까운 말을 했다. 동행한 사진 기자는 열심히 사진을 촬영한 뒤 안아주기도 하고 퍼즐도 맞추면서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비행기’ 등 한국말을 하더란다.
마감 때문에 바쁘게 경찰서를 떠날 시간이 됐다. 사진기자가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으니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해맑지만 쓸쓸해 보이는 눈망울에는 금새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다음 날 기사가 나간 후 에밀리로 이름이 밝혀진 여아는 다행히 아버지를 찾았고 친구 집에 머물던 어머니는 경찰에 잡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 스토리는 온 종일 미 언론에도 요란하게 보도됐다.
푸른 오월의 끝자락.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란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구가 떠오른다. 어른도 어린이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뜻으로 종종 오해되지만 실은 어린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의미다. 어린 시절의 경험, 교육, 성격 등이 어른 된 후의 모습을 결정한다.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는 사랑을 줄 줄 모르는 어른이 된다.
에밀리가 이 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섬세한 관심을 갖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없이 자녀를 ‘방치’해 놓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자녀를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고 있는지 한인 부모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 장 섭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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