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퀸즈 뮤지엄 광주 4인 작가전 오프닝 리셉션이 있었다.
이 “동쪽의 물결” 전시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예술가 홍성담씨가 1980년 5월 광주 정신을 소재로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이 1, 2층을 가득 메웠고 하철경·김대원·김영삼 3인 작가의 전통화 ‘향수전’이 함께 열리고 있다.
1980년 5월 전라남도 광주, 그곳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지닌 도시 광주에서 일어난 5월 광주민중항쟁은 한국민뿐 아니라 내 마음에도 부채로 남아있는 곳이다.
당시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신참 기자로 숨겨진 세상의 치부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재미를 막 맛보기 시작한 때였다. 1980년대 군부정권이 대중들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려고 정책적으로 허용하고 부추긴 대중문화 육성 및 향락산업에 온 국민이 정신없이 빠져 들어갔다. 자연히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출판물, 영화 및 연극, 패션 및 미용업 등이 눈부시게 발전하며 대중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패션, 미용, 대중문화 담당 기자를 하던 1980년 5월, 사무실 분위기가 으스스하게 가라앉으며 다들 ‘쉬쉬’ 하면서 말을 아끼는데 선배들이 두어명씩 몰려서 수군대는 말이 ‘광주로 가는 통로가 꽉 막혔대’, ‘한창 전투 중이래.’ 하는 말들…우리들의 발언이란 건 애시당초 없었다.그저 다들 열심히 책상 위에 코 박고 올해 어떤 옷이 유행하고 마사지는 어디가 잘 하고, 어떻게 하면 잘먹고 잘사는가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그 때를 지났고 어느 날인가는 편집이 마감된 대장을 들고 부장을 따라 덕수궁 돌담 뒤쪽에 임시로 마련된 가건물로 검열을 받으러 갔다.
신문, 잡지 등 모든 출판물은 군복 입은 장교들이 일일이 들춰보고 ‘검열 완’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 도장이 없으면 어떤 글, 사진 한 장도 인쇄할 수 없었다.붉은 색연필이 X자를 찍 그으면 제 날짜에 발간이 못되니 모든 인쇄매체 종사자들은 원판 원고와 더불어 절대 검열에 걸리지 않을 ‘생활의 지혜’니 ‘바람직한 성생활’이니 하는 그런 특집들을 별도로 준비해 다들 줄서서 검열을 기다렸다.
멋모르고 부장을 따라 갔다가 군복 차림 검열관들이 잔뜩 모인 사무실로 아리따운(젊음 그 자체로 누구나 그렇다) 여기자가 화사한 정장차림으로 들어가니 검열관이 부드러운 미소를 띄었고 말을 붙여 보려했고 갖고 간 대장은 순식간에 오 케이를 받아냈다. 함께 간 부장은 문을 나서며 희희낙락 “다음에도 같이 갑시다” 했다.물론 다시는 가지 않았지만 참으로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러고 몇 달 후 편집장은 애독자 참여 경품잔치의 당첨자를 뽑는 내게 말했다.
“광주 쪽으로 많이 뽑아주라구.’우리들이 할 일은 그때 그런 것밖에 없었다.그리고 황폐화된 민심을 달래고자 1995년 제1회 광주 비엔날레가 생겼다.‘폭도들의 난동’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광주 시민들의 투쟁’으로 정정되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고 그 5월의 광주 정신이 뉴욕의 퀸즈 뮤지엄에 옮겨져 지나간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분노의 함성으로, 목소리 높여 으샤으샤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함께 하려던 동작이 주춤해진다. 겉으로 드러난 분노보다는 안으로 삭힌 슬픔이, 차분한 목소리가 촉촉이 가슴을 적신다.
이번 퀸즈 뮤지엄의 ‘동쪽의 물결’전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조용히 가라앉은 저항의 역사와 전투적 명상, 치유의 공간이 화해와 용서를 제시하며 오히려 할 말을 조목조목 다해주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광주’는 절대로 지나칠 수 없다. 플러싱에 위치한 퀸즈 뮤지엄은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가볼만한 우리 역사의 한 장소이다. 숨기고 싶고 잊어버리고 싶다해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자.오는 11월30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에 보다 많은 한인들이 참여하여 결코 우리는 역사를 외면하는 자가 아님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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