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3년부터 10년간 국제장애인선교회의 총무를 맡고 있는 임선숙 선교사(54)는 장애인들 사이에 장애인 대모로 통한다.
그는 모든 생활을 장애인과 더불어 하고 그의 생활에서 장애인에 관련된 일을 빼면 다른 생활이 거의 없다. 선교사로서 그는 장애인 사역을 위해 장애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장애인 사역이란 다름아닌 장애인과 동고동락하는 일, 즉 한 식구가 되는 길 뿐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애인 사역을 하면서 지난 5년간 활동사항을 신문에 내는 것도 극력 피해온 그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한 끝에 마지못해 응해 주었다.
임총무가 맡고 있는 국제장애인선교회의기본 활동은 플러싱에 있는 선교회에서 매달 격주로 ‘만남의 장소’를 갖는 일이다. 장애인들과 장애인 봉사자들이 함께 모이는 이 자리에는 뉴욕지역 각 교회의 목사들이 초청되어 설교를 하고 참석자들의 친교 모임으로 이어지는데 임총무가 설교를 맡을 때도 많이 있다.
그 다음은 병원과 양로원을 찾는 일. 병원 사역은 1993년부터 시작되어 10년간 계속되고 있다. 당시 루즈벨트 아일랜드에 있는 골드워터 메모리얼 병원의 한인 장애인들을 찾았던 임
총무에게 장애인들이 주일예배를 보고 싶다고 간청했다. 이 때부터 임총무가 시작한 한국말 주일예배가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10년간 계속되고 있다. 주중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이 병원을 찾아 장애인 입원자들을 위로한다.
임총무는 일요일이면 여러 곳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오전 10시 플러싱 매너 너싱홈에서 주일설교를 하고 10시 30분에는 유니온 플라자 너싱홈의 예배에 참석한다. 그리고 오후 4시에는 골드워터 메모리얼 병원에서 예배를 인도한다.
이밖에도 선교회는 칼리지포인트 블러바드에 있는 워터뷰 너싱센터에서 주일예배, 플러싱 38애비뉴에 있는 롱아일랜드 케어센터에서 주일예배, 플러싱 매너 너싱홈에서 수요예배를 본다. 또 2000년부터 2년간 장애인 취업을 돕기 위해 치과기공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고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교실, 한국 수화교실, 미국 수화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뿐만 아니라 멀리 중국, 러시아, 필리핀, 케냐, 탄자니아 등에 장애인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현지 선교사를 돕고 있다. 특히 필리핀에는 시각장애자 700명을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가 있는가 하면 농아 선교사 부부가 함께 사역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임총무는 뉴욕에서 빌라델비아 장로교회를 개척하며 시무했던 고 박재철 목사의 사모이다. 연세대 신과대학을 나온 박 목사가 1979년 1월 유학으로 도미할 때 함께 따라와 뉴욕에 정착했다. 박 목사가 빌라델비아장로교회에 시무할 때 목회자의 사모로써 교회 일에 전념했던 그는 1993년 박 목사가 지병으로 별세한 후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고 한
다.
그 때까지 빌라델비아교회는 만주의 용정에 있는 지신중학교를 도와 왔는데 박 목사의 별세 후 이 학교에서 임총무를 졸업식에 초대했다. 그래서 졸업식에 참석했던 임총무는 거기에서 국제 장애인선교회를 설립하여 총무 일을 해온 양정숙 전도사를 만났다. 이 때 양 전도사가 임총무에게 선교회 일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임총무는 그 당시 이미 다른 사역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주위에서도 험난하고 어려운 장애인 선교를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의 진로를 놓고 기도했는데 “열매가 어디서 열리느냐?”는 음성과 함께 “땅속에 열매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땅 속의 열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묻힌 곳, 소외된 곳이었다. 땅 속에 하나님의 귀한 열매가 있는데 이 열매를 추수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하여 장애인 선교를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1993년 선교회의 총무를 맡은 그는 다음 해 비영리단체 등록을 하고 본격적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임총무는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장애인들과 접촉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병원과 너싱홈에서 예배를 보면서 장애인들이 감격해서 울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명감을 강렬하게 느꼈다고 한다. 너싱홈에 있는 노인들이 지금은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제시대와 6.25, 4.19, 5.16 등 온갖 풍상을 겪어온 인생의 선배들인데 자식이나 교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고 한다.
임총무는 그들에게 ‘봉쇄 수도원’에서 도를 닦는다고 생각하자고 위로하며 삶의 가치를 느끼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3년 전 팔과 다리를 다쳐 1년 동안 고생했는데 이 때 장애인의 어려움을 어렴풋이나마 체험했다
고 털어놓았다.
국제 장애인선교회에는 300여명의 장애인의 등록되어 있다. 대부분이 지체장애인이며 선천적 장애인 보다는 교통사고, 당뇨, 고혈압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이 대부분이다. 병원에서는 이들을 환자라고 하지만 장애인 기관에서는 장애인이라고 한다. 이런 장애인이 미국에는 전 인구의 3% 내지 1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장애인 선교회에서는 장애인에 대해 시각 장애인이니 청각 장애인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저 이름 석자에 아무개씨라고만 한다는 것이다.
임총무에 따르면 장애인을 돕는다는 것은 친구가 되는 것이란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장애인 사역을 하거나 장애인을 돕는다는 사람을 불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과 똑같은 입장이 되어 동고동락해야 하는 자신이 신문에 나게 되면 장애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고 임총무는 걱정이 대단했다.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을 국가에서 돕고 있는데 따로 도와줄 이유가 있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신분미비의 장애인도 있고 국가에서 해줄 수 없는 일도 많다는 것이 임총무의 말이다.
선교회의 사무실비, 인건비, 각종 프로그램 경비로 많은 돈이 드는데 10년을 한결같이 얼굴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고 도와주는 독지가들도 있다고 한다. 또 과거에 주로 장애인으로서 아픈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선교회에서 10년간 자원봉사하고 있는 사람도 2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소외된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직 성한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강조하는 임총무는 최근들어 한인사회에 장애인 단체들이 많이 생겨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제부터는 영어권의 사람들이 장애인 사업에 참가하여 미국 기관과 함께 일하도록 해야 하며 한인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지속적인 자원봉사
활동이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라고 했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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