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까레이스키(고려인)’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구소련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의 악명높은 강제이주정책으로 극동지역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옮겨졌던 20만 고려인의 후예들이 인종차별의 질곡속에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흘러 들었지만 거의가 러시아어에만 익숙, 또 다른 ‘섬’에 갇혀 있다.
엘사 라피코바(58.여) 등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캘리포니아주 까레이스키들의 숫자는 250명 안팎. 라피코바의 처녀때 성(姓)은 최씨. 그는 1995년 미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한국어를 전혀 구사할 수 없었으나 “몸에 흐르는 피나 피부가 코리언인데도 까막 눈에 귀머거리인 것이 부끄러워 더듬더듬 말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 덕에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해졌다.
지금은 신학을 공부, 매주 일요일 우즈벡 등에서 온 이민자들을 위한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엘사 최를 포함한 대부분 고려인들은 한국에 기반을 둔 재미교포들과 혈통은 같지만 문화적 배경이나 ‘모국어’가 달라 오히려 샌퍼낸도 밸리 등 러시아 공동체와 교류가 잦은 편이다. 최근에서야 엘사와 로타 김(45.법무사)씨 등을 중심으로 인종·민족적 정체성을 자각, 러시아말을 하는 ‘까레이스키’ 공동체 창설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코리아타운내 한 교회에서 열리는 이들만의 러시아어 예배도 그 작업의 일환.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까레이스키들의 미 체류신분은 난민으로 이들은 대부분 무신론자이거나 정교회, 그밖의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이슬람신앙이 지배적인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인종, 언어, 신앙으로 인해 차별과 탄압을 받아와 일부는 미 연방 이민당국으로부터 정치적 망명이 허용되는 등 합법적 신분이지만 상당수는 지위가 불안정하다.
우즈벡 검찰 고위 관리를 지내다 LA로 이주한 게나지 최(68)도 아들이 러시아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지만 부인과 딸 둘, 외손주들을 데리고 아예 미국으로 건너왔다.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살아있을 때인 지난 1990년 우즈벡 ‘까레이스키’대표로 주석궁을 예방, 함께 사진을 찍는 등 평양도 몇차례 오갔지만 새로 뿌리를 내릴 셈이다.
옌볜(延邊) 등 중국계 조선족들의 경우 한국어를 구사, 코리아타운 음식점 등에서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지만 까레이스키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워 청소등 극히 제한된 일을 하고 있거나 역시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유대인사업체 등에 고용돼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엘사 최씨는 특히 “무엇보다 큰 고충은 선교단체가 돕고 있고 LA한인회도 격려금을 보내고 있지만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달라 한인사회와 어울리기 힘들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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