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이민 100주년은 어떤 면에서 고난의 이민사였다. 타민족 이민자들이 겪었듯이 한인 이민자 역시 다른 언어와 풍습, 관습 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경제적 생존의 문제도 쉽지 않았지만 법과 관습의 차이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한 한인들이 많았다.
한인 법조인들은 이런 면에서 한인이민자들의 희망이다. 전경배 판사와 전준호 변호사는 뉴욕 한인사회 법조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어릴 적 미국에 온 1.5세이고 검찰청에서 동시대에 근무했던 1세대 검사들이다. 지금은 판사로, 형사재판 담당 변호사로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이들은 남들이 흔히 가지 않는 독특한 이력으로 이정표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로 인해 한인이민사회의 또다른 100년이 이전의 100년과는 다를 것이다. <편집자 주>
■전경배 뉴욕주법원 판사
전경배(42) 판사에게는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최초의 맨하탄검찰청 한인 검사, 최초의 한인 뉴욕시 법원 판사에 이어, 얼마전 승진한 뉴욕주 법원 판사까지 뉴욕 한인으로는 항상 최초다.
지금이야 뉴욕 일대 한인 변호사들이 매년 150명 이상씩 배출되고 있고, 각 보로 검찰청마다 한인 검사들이 더러 있지만 ‘한인 법조계의 대형’ 격인 전 판사의 행보는 항상 주목의 대상이다.
그러나 최초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만큼 어깨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눈이 쌓인 길에 찍힌 발자국처럼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그런 느낌처럼 말이다. 11살 때 미국으로 이민온 전 판사는 스타이브슨트고교를 졸업했다. 반항기적인 생활을 거쳐 존스합킨스대학에서 의사 공부를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철학으로 바꿨다.
대학시절에도 교회의 성가 활동이나 뮤지컬 등 과외 활동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포담대 법대 재학 중 연방검찰청에서 연수를 했고 그때의 경험으로 검사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지난 87년 전 판사는 맨하탄 검찰청에서 한인 검사로 임명된다. 각종 살인사건과 동양계 조직 범죄 등을 담당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98년에는 부장검사로 승진했다. 지난 99년에는 뉴욕시 형사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뉴욕시 브루클린형사법원에서 판사직을 수행하다 불과 5년의 짧은 경력(?)으로 주법원 판사로 승진했다.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앞서나가는 전 판사의 어깨에는 항상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에게는 우스운 일화들이 많다.
처음 검사로 법정에 갔을 때는 법원 수위가 통역관으로 오해하고, 판사로 임명돼 갔을 때는 신출내기 검사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시법원 판사 시절에는 미국의 유명 포르노잡지 소유주에게 경범죄를 적용했던 일 때문에 우스광스러운 모습으로 풍자돼 그가 운영하는 포르노 잡지 커버에 실린 적도 있다.
전 판사는 뉴욕주 법원 판사라는 또다른 도전의 기회를 잡았다. 원래 주법원 판사는 선출직이지만 과다한 업무량으로 뉴욕시 판사 가운데 일부를 승진시켜 주법원 판사로 활용한다. 시 법원 판사들이 1년 미만의 형량만을 선고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주법원 판사는 최고 사형까지도 선고가 가능하다.
조심스럽고 겸손한 태도로 재판을 이끌지만 단호하고 현명한 판결로 인정받아 얻은 결과다. 전 판사는 판사의 역할에 대해 가운데 서는 것이 한쪽 편에서 밀어붙이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미국법이 판례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나태해질 수 없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0년후 퀸즈검찰총장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 연방 검사도 해보고 싶지만 워낙 정치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뒤로 미루고 있다. 전 판사는 앞으로 한인사회 100년을 이끌어갈 후배 법조인에게 말하고 싶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20년전에는 법조계에 한인들이 희귀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수천명의 한인 변호사와 각 보로별로 10여명씩 한인 검사들이 활동하는 등 많은 발전을 해왔다고 평가하면서 이같은 발전은 그동안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려고 도전했던 노력의 대가라고 말했다.
전 판사는 검사에서 판사가 된 자신의 경험과 로펌에서 근무하다가 파트너까지 올라간 한인 법조인들을 예를 들면서 후배들이 남이 하는 일을 단순히 따라간다고 생각하기보다 스스로 한사람 한사람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강한 도전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 한인 변호사들이 일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한 전 판사는 멀리 내다보고 목표를 잡는 그런 후배들이 많이 배출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전준호 변호사
한인 밀집 지역인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팰리세이즈팍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한인이 범법 행위로 팰리세이즈팍 경찰에 체포돼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 한인은 경찰에게 돈이 얼마가 들어도 유능한 미국인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말하자 팰리세이즈팍 경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매튜가 이 방면에서는 최고야. 전준호(미국명 매튜 전) 변호사는 뉴욕과 뉴저지의 한인 변호사 가운데 형사 재판 전문 변호사로 손꼽힌다. 지난 10년동안 한인사회에서 일어났던 주요 형사 사건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있었다.
변호사라고 해서 모두 재판 전문가는 아니다. 변호사들은 각자 전문적인 관심 분야와 영역이 있지만 그 중 형사 사건은 재판 기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가 까다로우며 재판의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인 변호사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에 속한다. 전 변호사는 한인 피의자들의 변호를 맡아 그동안 수천건의 형사 재판을 담당해온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한인들이 순진하고 미국의 법률 체계를 잘 알지 못해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하거나 억울한 피해를 보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재판을 하던 중 지나치게 꼼꼼히 따지고 들어 판사로부터 ‘감옥 가겠냐’는 소리도 여러차례 들었다. 법정에서 알게 모르게 소수계 피의자에게 차별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넘어가지 않고 일부러 화도 내는 쇼맨십을 발휘하기도 해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뉴저지주 형사 재판에서는 피고가 원할 경우 법정 통역관을 준비하도록 되어 있지만 법원에서는 그런 배려를 하지 않기 일쑤였다. 전 변호사는 재판장이 피고의 말을 직접 듣고 이해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있겠냐며 수차례 법정에서 싸움을 벌인 끝에 통역관을 받드시 준비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같은 이력은 전 변호사의 성격과 성장 과정
에서 기인한다.
9살 때 이민온 그는 학교에서 머리를 기르고 싶은 학생이 법정 소송에서 승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다는 책을 읽고 ‘법이 사람을 보호하고 도와줄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됐다.
전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법적 투쟁을 통해 미국법의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매력이라며 이민자들의 억울한 케이스를 해결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포담대 법대를 졸업했다. 89년 맨하탄 검찰청에서 4년 근무한 뒤 93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맨하탄검찰청에서 존 F 케네디 주니어와 함께 일을 해와 그가 사망하기 전 한국에 오갈 때 함께 동행했던 이력도 갖고 있다.
뉴저지주대법원 산하 변호사 징계위원회의 유일한 한인 위원이기도 한 전 변호사는 형사 재판 전문가로 널리 알려지면서 1월부터 모교인 포담대 법대에서 ‘재판 기술(Litigation Skill) 이라는 강좌를 맡았다.
전 변호사는 한인사회의 이민사가 앞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인 지원을 담당할 재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인사회가 정치 경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단합된 힘이 필요하고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을 할 재단이 있다면 유능한 한인 변호사들이 보다 한인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한인사회가 한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한인 경제인이든 변호사든 개인 몫을 챙기기 보다 서로 믿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김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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