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화백은 1930년대부터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을 전개했고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한국에 처음으로 추상미술을 도입했다. 김 화백은 올해 87세임에도 뉴욕 업스테이트 웨체스터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박정아양은 10세 때 이민와 굵직굵직한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촉망받는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다. 나이에 비해 원숙하면서도 놀라운 테크닉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차세대 유망주다.
40여 년간 한국 정서가 흐르는 추상 미술로 미국 땅에 뿌리 내리고 있는 거목과 앞으로 미주류 음악계에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비상할 1.5세 꿈나무 연주자의 만남을 통해 미주 한인 이민 100년의 역사를 되새겨 보고 앞으로 또 다른 100년을 내다본다. <편집자주>
허드슨 강을 사이로 맨하탄이 바라다 보이는 뉴저지 에지워터 강변 공원에서 만난 김병기 화백과 박정아양은 첫 대면이지만 68세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상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김 화백은 평양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일본 유학시절, 8.15 해방을 거쳐 서울에서 보낸 20년의 삶, 65년 상파울로 초대 심사위원으로 고국을 떠나 그 길로 미국에 정착, 자기만의 미술 세계를 구축해왔다. 제자들이 이미 원로화가가 되었고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재학 중 교유했던 이중섭, 아방가르드 연구소 친구 김환기 등이 세상을 뜬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한국에 처음으로 유화를 도입한 김찬영씨다.
몬드리안의 수직과 수평의 기하학을 과감하게 도입한 초기 작품을 비롯 음악을 무척 사랑한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유동적이고 리듬이 흐르고 있다. 현대 추상 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나 입체파를 대표하는 피카소의 그림처럼 그의 그림에서도 음악의 리듬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차르트와 슈만을 좋아하는 노화가와 베토벤, 바흐, 브람스를 좋아하는 소녀
연주자는 2시간의 만남 동안 음악과 예술에 대해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맨하탄에 나오면 도전의식과 불타는 야망이 느껴진다는 김화백이 증손녀 뻘인 박양에게 가장 먼저 들려준 이야기는 피카소에 대해 언급한 스위스 출신 조각가 자코메티의 일화였다. 자코메티는 큐비즘(입체파)의 화가 피카소에 대해 ‘예술가인줄 알았는데 천재에 불과하더라’고 평했지. 이는 예술가를 천재 위에 둠으로써 예술가의 창의성이 생명임을 강조한 것이지.천재적인 예술가는 많지만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음악가는 많지 않은 현실에 못내 아쉬움을 나타내며 예술창조에 대한 경이로움을 잃지 말 것을 조언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어디서 본듯한 느낌을 주는 보편성이 지배적이야. 창의성이 부족한 작가는 대가가 될 수 없고 말고.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박양은 아무리 신동이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연주자가 되지 못한다면 생명이 짧을 수 밖에 없다는 노 선배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미국에 와보니 음악 교육이 한국과는 다르더군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전수시키기보다는 학생 개개인의 음악성을 발굴하도록 하는데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열살 때 미국에 온 박양은 학교생활에 적응하랴 하루 5∼6시간씩 피아노 연습하랴, 매우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뉴저지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금상, 뉴욕 쇼팽 콩쿠르 1등, 퀸즈 심포니 콩쿠르 1등, 텍사스 코퍼스 크리스티 국제 피아노 콩쿠르 대상, 줄리어드 음대 콩쿠르 1등 등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그는 다른 1.5세나 2세 음악가들처럼 한인 사회와 접촉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음악가들과 이들의 길잡이가 될 1세들을 이어주는 네트웍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1세 문화인들과의 폭넓은 교류를 희망했다.
앞으로 한인들은 또 다른 이민 100년을 맞게 될 것이다.다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 사회를 우리는 흔히 거대한 용광로에 비유한다. 대 원로급 1세대인 김 화백은 그러나 우리 한인들은 용광로처럼 범벅이 되어 녹아 없어져 미 사회에 흡수되기보다는 우리 고유 문화를 보존하면서 미 주류 사회 일원이 되야 한다고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졌
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는 이만큼 성장했다. 우수한 문화 유산을 가진 한민족으로서 자신감을 갖고 미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1세들과 미래 한인사회를 이끌어갈 1.5세 및 2세들은 열등의식 혹은 우월감을 버리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이민 101주년이 되는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김병기 화백 연력
1916년 4월10일 출생, 일본 아방가르드 연구소와 문화학원에서 공부.
서울미대 교수, 사라토가 스프링스 스키드모어 대학 초빙교수 역임, 66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초청 심사위원, 가나 갤러리 초대전, 파리 베나무 브라비에 갤러리 초대전, 가나 아트센터 회고전 등 수 차례 개인전, 그룹전으로는 93년 서울 원로작가 초대전과 뉴욕한국문화원 주최 이민 100주년 기념 뉴욕중견작가 20인전 등이 있음. 주요 작품으로는 호암 미술관과, 국립현대 미술관 소장품인 ‘깊은 골짜기에서 떠나오다’, ‘광야’, ‘노스웨이’를 비롯 ‘인왕제식’,’갈대’, ‘영주의 나무’, ‘북한산’ 등 다수.
■피아니스트 박정아 연력
부산 출생, 4세 때 피아노 시작. 1995년 뛰어난 예술인에 주는 대통령상인 ‘프라디지 어워드’(Prodigy Award) 수상. 뉴저지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금상, 뉴욕 쇼팽 콩쿠르 1등, 퀸즈 심포니 콩쿠르 1등, 텍사스 코퍼스 크리스티 국제 피아노 콩쿠르 대상, 줄리어드 음대 콩쿠르 1등, 와이드만 국제 피아노 콩쿠르 1등. 이외 맨하탄 음대 피아노 콩쿠르, 오벌린 콩쿠르, 이스트만 콩쿠르 등에서 입상.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를 거쳐 현재 줄리어드 음대 3학년 재학 중.
<김진혜 기자> jh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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