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천여 년 전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여관방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갈릴레아 나자렛을 떠나 300리 먼길 여행 끝에 도착한 부부는 이미 진통이 시작된 만삭의 마리아 때문에 너무 다급했지만 마을 어디서도 방을 얻을 수 없었다. 당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호구조사령으로 갑작스런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다윗의 후손들이 주민등록을 위해 전 로마 각지로부터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허름한 헛간도 비싼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주민 누구도 위기에 처한 이 부부에게 자비를 베풀려 하지 않았다.
미안했던지 한 주민이 “마을 어귀에 가축들이 추위와 비바람을 피하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괜찮으면 그 곳으로 가보시지요”라고 권했고 요셉은 마리아를 태운 나귀의 고삐를 끌어 그리로 향했다. 이리하여 예수는 짐승들의 거처인 차가운 동굴에서 탄생하셨다. 갑작스레 닥친 물질적 풍요가 순박한 베들레헴 주민들의 마음을 차고 몰인정하게 만들어 예수는 냉대를 받으며 태어나셨던 것이다.
성탄의 계절은 연말연시와 맞물려 최고 특수를 맞는 절호의 상업시기다. 캐롤송이 울려 퍼지는 상점마다 선물을 잔뜩 쌓아 놓고 고객을 유인한다. 흥청대는 분위기 속에 사람들은 들떠 있다. 이 와중에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는 소외당하기 일쑤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계절에 예수의 심정을 이해하는 이들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물질적 풍요는 예수를 환영하기 어렵게 한다. 가난한 이들은 절로 겸손해 예수의 방문을 쉽게 알아채고 맞아들인다. 물질의 풍요는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기 십상이다.
평화의 사도로 완전한 가난의 삶을 평생 살다가신 프란치스코 수도회 창설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출생시 어머니가 난산으로 낳지 못하다가 마구간에 가서야 낳을 수 있게 됐다는 일화가 있다. 성인에게 예수님의 삶을 완전히 모방토록 그 출생의 배경까지 미리 계획하신 하느님의 안배다.
오늘날도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영혼 안에 탄생하신다. 그러나 준비된 영혼 안에 즐겨 나신다.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시고도 따뜻한 방 한 칸 내 놓아라 항변치 않았던 마리아와 같은 겸손한 영혼, 돈 없고 권력 없어 만삭의 아내에게 방 한 칸 마련해 주지 못했던 요셉과 같이 오직 하느님밖에 의지할 데 없는 영혼, 제 자리를 차지해도 불평 없이 체온을 나눠주던 마구간 짐승들 처럼 관대한 영혼 안에서.
갈수록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지는 이 시대에 과연 예수께서는 어디서 탄생하셔야 할까. 주인공이신 예수는 이 성탄절에 또 다시 왕따 당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이 종 하 신부
<미주가톨릭신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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