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에 이민 와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랐다. 북한 사람들은 온몸이 빨갛고 머리에 뿔이 난 도깨비로 묘사됐다. 북한이란 이름 뒤에는 꼭 허수아비를 뜻하는 ‘괴뢰’라는 단어를 붙여 ‘북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런 교육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의문이다. 어린 아이들이 철이 들면서, 남북 교류가 이뤄지면서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생긴 한국인이라는 것이 분명해졌고 그와 함께 그런 유치한 반공 교육을 강요한 정부와 학교가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 ‘빨갱이’로 몰리면 본인 뿐 아니라 온 가족이 죽을 고생을 했다. 현재 한국 지식층과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좌경으로 흐르는 데는 군사 독재 시절의 무자비한 사상 탄압이 한 몫을 했다. 이제야 이런 경직된 분위기가 조금씩 풀려 가는 듯하다.
최근 양은식 씨가 40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양씨는 한국 정부 허락 없이 북한에 왕래했다는 이유로 입국이 금지된 인사의 하나다. 양씨 이외에도 ‘좌경 인사’ 혹은 ‘친북 인사’로 분류되던 많은 사람들이 한국 땅을 밟았다. 어느 나라나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려 하거나 간첩 등 이적 행위를 하는 것은 금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 자체를 문제삼아 감옥에 집어넣거나 자기 나라 땅을 밟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 상대방의 입을 막아 놓고 토론에서 승리했다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남의 주장을 경청하는 훈련이 부족하다. 열띤 공방을 하다가도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를 치고 웃으며 헤어지는 미국인들과 너무 대조적이다. 토론을 하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목청이 높아지다가 의가 상한 채 헤어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토론의 주제가 정치, 북한과 관련된 것일수록 그런 경향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사상범’들의 입국 허용은 한국 사회가 진일보하고 있다는 증거지만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8.15 경축 행사장에서는 태극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려던 보수 인사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북한 측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그와 비슷한 시기에 “6.25는 북한의 통일 전쟁”이란 주장을 한 동국대 강모 교수를 사법 당국이 기소하기로 했다는 뉴스도 들린다. 이놈도 잡고 저놈도 잡고 모두 잡아가겠다는 것인가. 반공 일변도 교육이 사라지면서 혼돈에 빠진 한국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사상의 자유’는 계몽주의 이후 인류가 얻어낸 값비싼 성과의 하나다. 여기에는 여러 주장이 ‘사상의 시장’에서 자유 경쟁을 벌이면 결국 진리가 이긴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황당무계한 주장을 펴는 사람을 잡아넣기보다는 공개 토론을 통해 그 주장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다. 한국민과 정부가 “당신과 주장을 달리하지만 내 목숨을 걸고 당신이 그 주장을 펼 권리를 옹호하겠다”던 볼테르의 말에 귀기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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