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정거장을 지나친 것을 뒤늦게 알고
화들짝 일어섰다 멋쩍게 주저앉는다
늦은 장마철이어서 그나마 빈자리가 있었던 것인데
다리는 무겁고 눈꺼풀은 저절로 감기고
내 모르는 새 지나친 정거장만큼
생을 훌쩍 건너뛸 수는 없을까
내릴 곳을 잊은 채 두 눈을 멀뚱거리는
낯선 얼굴이 차창에 어룽댔다
실은 내릴 곳을 영영 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정거장만큼이나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자각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스쳐 지나간 정거장으로 돌아가야 할지
그대로 태연히 앉아 있어야 할지
다음 행선지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내릴지
시간이라는 전철에 앉아 있다. 목적지인 내려야할 정거장이 과연 있는 것일까. 몽롱한 채 지나치고 있는 목표물들, 그냥 ‘가고 있다’는 행위는 차창에 어룽대는 자신의 모습마저도 낯 선 얼굴이 돼 보이는 현실, 그냥 벗어나고 싶기만 한 삶이다. 분명 내려서야 할 정거장을 어정쩡한 채 지나치고 싶은 현대인의 삶은 참 고달프기만 하다. 문인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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