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은 줄 알고 혼자 살던 여자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되었다. 주민들은 혼자 사는 여자가 아이를 낳았으니 간통(Adultery)의 죄를 범했다며 이니셜 A를 주홍실로 가슴에 새기고 다니라는 벌을 내린다.
미국 작가 N. 호손의 대표적 장편소설 ‘주홍글씨’의 도입부이다. 1640년대 보스턴의 청교도 사회를 무대로 한 이 소설에서 여주인공 헤스터는 수치스런 A를 가슴에 달고 평생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무대가 만약 지금의 미국이라면 어떠했을까. 21세기 미국의 보편적 여성이라면 몇 년 동안 소식 한번 없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무작정 혼자 살 것 같지도 않고, 그런 외로움 속에서 사회 지도인사인 멋진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고 죄의식을 갖지도 않을 것 같다.
시대가 그 만큼 바뀐 것이다. 사회적 윤리관과 여성의 의식이 바뀌면서 생긴 변화이다. 그런데 요즘 미국 사회를 보면 여기서 한발짝을 더 나가니 문제이다. 윤리적으로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도 자숙하기는커녕 그걸 오히려 돈 버는 데 이용하는 풍조이다. ‘주홍글씨’를 예로 든다면 여주인공이 ‘아이 아빠는 누구인가’식의 책을 써서 주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돈방석에 올라앉는 행위이다.
청교도적 윤리관을 토대로 세워진 미국에서 도덕적 수치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잘못을 했으면 겉으로라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한데 그런 자연스런 과정이 실종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람들이 너무 뻔뻔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니카 르윈스키 케이스. 옛날 식으로 하자면 큼지막한 A를 가슴에 달고 살아도 모자랄 대형 스캔들이었다. 1차적 책임은 물론 젊은 인턴과 바람을 피우고 말장난으로 이리 저리 피하던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더 문제는 스캔들로 유명해진 김에 돈 벌어보자는 태도. 대통령과의 스캔들로 여기저기 미디어에 얼굴과 이름이 오르내리자 르윈스키는 패션 사업을 하네, 핸드백 사업을 하네 하며 사업구상을 했었다.
몇년전 남의 기사 베끼고, 없는 이야기 지어내 기사로 쓰다가 들킨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기자도 같은 케이스. 언론인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수치인데 그 일로 뉴스위크며 뉴욕 매거진 등에 커버스토리로 등장하자 당장 시작한 일이 책 저술이었다. 누군가 자기 같은 과오를 범하다 패가망신할 사람이 있을까봐 경고성 이야기를 쓴다고 했지만 이름 난 김에 떼돈 벌어보겠다는 의도는 누가 봐도 자명했다.
O.J. 심슨의 ‘만약 내가 했다면’책이 결국 취소되었다. 아무리 세상이 뻔뻔해지고 ‘스캔들이 곧 돈인 시대’라도 이건 너무 하다는 대중적 반발의 결과이다. 심슨이 전 처와 그 남자친구 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 평결을 받고 자유의 몸으로 살고 있는 것도 역겨운데, 그 내용을 책으로 써서 돈까지 버는 것은 도저히 볼 수 없다는 분노이다. 심슨 인터뷰를 기획했던 폭스 TV도 인터뷰를 취소했다. 시청률 높이려고 너무 센세이셔널 한 시도를 했던 폭스 TV가 이번에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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