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창작과비평’ 봄호를 통해 등단한 조성국 시인이 시집 ‘슬그머니’를 펴냈다. 등단 18년 만에 펴낸 첫 시집으로 ‘우사’(牛舍) ‘동백나무’ ‘홍시’ ‘화개장터’ 등 향토색 짙은 소재들과 시어들을 통해 따뜻하고 신비로운 생명의 모습을 잘 포착했다.
우사에 불빛이 환하다/ 보름이나 앞당겨 낳은 첫배의/ 송아지 눈매가 생그럽다/ 바싹 추켜 올라간 소꼬릴 연실 얻어맞으며/ 얼굴 벌겋게 달아올라서,/ 새 목숨/ 힘겨이 받아내던 친구는/ 모래물집에 젖은 털을 닦아주며/ 우유 꼭지 물리는데/ 그 모습 이윽히 지켜본 어미 소가/ 아주 곤한 잠을 청하였다(’순산’ 전문)
특히 ‘고자누룩한’ ‘부산나게’ ‘푸하얗게’ ‘사리사리’ ‘노리치근한’ ‘작신 패대며’ 등 70여 편의 작품들에 스며 있는 각양각색의 고유어들은 다채로운 생명의 모습을 더욱 생동감 있게 조명한다.
굵은 여우비 지난 골함석집/ 고자누룩한 터앝에 낮게 엎드린 산모가/ 흠뻑 젖은 머릿수건을 개울에 빨아/ 제 젖가슴을 두어 번 훔쳐내고는/ 툇마루에 자지러질 듯 기지개 켜는/ 새끼 입에 그 탱탱 분 것을 물리는데(’흰 동백’ 부분)
백주 대낮이다/ 그 큰 젖통을 주체 못해 가슴께로/ 광목천 칭칭 동여매고 다니던 노처녀가/ 못밥 내다 말고/ 느닷없이 작대기를 치켜든다/ 달뜬 숨 몰아쉬며 꽁무니 맞댄 채 도망치는/ 똥개 한 쌍을 기어코 뒤쫓는다(’파안’ 부분)
평론가 오태호씨는 시인은 토박이말을 살뜰히 부려 ‘소란스런 현실’과 ‘적요로운 풍경’ 사이를 유동하며 대상 세계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내고자 한다며 시인 자신의 시선을 해체한 채 대상을 새롭게 그려내고 있다고 평했다.
시인은 책 말미에 십년 하고도 또 십년을 에돌아서 다시 여기에 돌아올 수 있었던 내가 퍽 다행스럽다며 18년 만에 첫 시집을 낸 소감을 적었다. 실천문학사. 144쪽.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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