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텍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전 미국이 슬픔과 혼돈에 휩싸여 있다. 특히 미주 한인사회와 한국에서는 희생자의 숫자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영주권을 소지한 한인이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미주 한인사회내 언론들의 보도내용을 대하고 있자면 혹시나 이번 총기난사사건의 가해자가 한인이라는 사실때문에 미국내에서 한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거나 한인이 보복성 혐오범죄의 표적이 되는 등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미국 주요언론들의 보도행태를 보면 이러한 한인사회의 우려가 기우만은 아닐 수 있다는 걱정이 들게 하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범죄를 저지르게된 원인을 독립적으로 분리시켜 생각해 보았을 때, 가해자의 국적이 이번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가해자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한인 또는 한국 국적의 대학생임을 강조하는 것은 보도윤리에 어긋나는 불공정한 처사이다.
사건의 원인과 아무런 관계없는 국적과 인종을 강조하는 것은 가해자와 같은 국적을 갖고 있거나 같은 인종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는 불안감을 갖게 하고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적대감을 갖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옳지 않은 보도행태이며, 인종갈등과 반이민 정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미국에서 집단간에 대립이 일어날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한국 언론들도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건 마찬가지이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한인으로 밝혀진 후, 한국 언론들은 한미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한미관계 우려,” 혹은 “FTA성과 퇴색될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며 한미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미국의 외교당국자들이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고 해서 FTA를 비롯한 한미간 현안을 놓고 한국정부를 압박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기도 하거니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오히려 그런 무책임하고 비논리적인 태도에 충분히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한미관계에 불만을 품고 어떠한 이념적 목적을 갖고 총기난사를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를 들먹이며 외교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국과 한인언론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미국에서 자라나는 1.5세나 2세 자녀들의 정체성 혼돈과 이민가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한 개인의 반사회적 성향으로 비롯된 문제를 한인 이민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비화하는 것도 해답을 찾는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학교내 치안의 문제, 그리고 총기소유에 관한 문제다. 학교내에서 학생들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지, 그리고 총기소유을 어떻게 규제할 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사건의 재발은 결코 예방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유족을 위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한인이라서 애도와 위로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 혹은 집단적 차원에서 사죄를 하는 것은 적절한 대응책이 아니라고 본다.
정치적 목적을 띠지 않은 한 개인의 범죄행위에 대해 국가나 집단이 나서서 사죄하는 일이야말로 미국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승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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