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인에서 속리를 보다
마을 어귀에는 볼록거울이 하나 장승처럼 서있어
그 앞을 지나는 것은 무엇이든 잠시
길게 잡아 늘였다가 놓는다.
좌우로 한껏 당겨졌던 것들은
그 거울을 빠져나가면서 비로소
팅 하고는 본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 앞에서 어정거리는 자신을 빤히 들여다보는
내 얼굴도 넓죽이처럼 퍼지고
방금 빨려든 승용차도 솥뚜껑처럼 퍼진다.
하지만, 돌 맞은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건
둥글게 담긴 그 마을에 아이들이 없다는 증거.
저 거울은, 감나무와 함께 늙어가는
마을을 지켜보는 중이다.
할머니를 태운 경운기가 딸딸딸 휘어든다.
냇둑을 따라서 난 우회도로로 차들은 더욱 빨리 달리고,
새로 난 길과 옛길이 만나느라 잠시 주춤거리는 마을 입구에는
하염없이 큰 잉어의 눈알 같은
볼록 거울이 하나 있어
오늘도 어김없이 스쳐가는 것들의 양 볼을 쥐고
힘껏 잡아당겼다 놓는다.
그 손아귀에서 재빨리 풀려나는 차들이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처럼 싱그럽다.
정진명(1960~) ‘볼록거울’ 전문
볼록거울에 붙잡히는 풍경이 조금쯤은 쓸쓸하고 적적하다. 돌 맞은 자국 하나도 없이 깨끗해서, 그 거울에 돌멩이 던지는 아이들 모습이 보이지 않아. 부제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회인에서 속리’ 아니라 쓸쓸한 우리의 ‘미래’다. 감나무와 함께 늙어가던 마을도, 잉어처럼 싱그럽게 거울 속으로 튀어들던 차들도, 시간도, 나도, 당신도 종내는 모두 빠져나가고 우리하고는 전혀 상관도 없을, 낯선 풍경을 끌어안게 될 그 볼록거울!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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