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눌변(訥辯)’ 전문
어떤 시인이 불혹(不惑)을 부록이라고 말한다. 갑자기 삶이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두툼해지고 남은 시간들이 감사해진다. 연말에 불우이웃돕기라도 좀 할까? 뒷주머니를 툭툭 건드려보다가 또 불혹(不惑)을 물혹이라 말한 어떤 시인의 시를 만난다. 갑자기 쓸데없는 혹 하나를 달고 나타난 삶이 물컹거리고 거추장스럽다. 혹부리영감처럼 어디 도깨비라도 찾아갈까? 나는 나이를 호두알처럼 만지작거린다.
아 필요한 사람이라 말하려다 그만 아 피로한 사랑이라 말한다.
어디서 먹장구름 한 조각이 몰려온다.
참 한심한 주머니 속
누룽지같이 눌어붙은 생각
토하지 못한 말들
뭉클 만져진다.
불혹을 불혹이라고 똑 떨어지게 말할 줄 알면 이미 시 정신에 위배되므로 시인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 되도록 어눌하게, 눙치고 뺨치고 할 줄 알아야 겨우 부재할 수 있는 시인의 나라. 여성지의 학습효과로 오래 전부터 필수적인 게 부록이라면, 생의 부록 정도는 눌변의 시인이 채워야할 의무가 있다. 세상이 세상을 쫓아 빠르게 달아날수록, ‘필요한 사람’이라고 똑떨어지게 말할 줄 아는 사람보다 ‘피로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이 필요하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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