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정말 이해가 안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오나시스와 재혼한 재클린 이 케네디 옆에 묻힌 사실이다. 한때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다른 남자와 재혼한 여자다. 그가 죽어서 다시 첫번째 남편 옆에 묻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량있게 받아들인 미국민들의 사고방식에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케네디 묘지는 워싱턴 모뉴먼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알링턴 국립묘지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왼쪽에 출생 3일 만에 죽은 패트릭, 다음이 케네디, 다음이 재클린, 그리고 맨 오른쪽에 사산한 딸 아라벨라가 묻혀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묘비에 재클린의 이름이 어떻게 적혀져 있느냐다. 왜냐하면 족보상으로는 재클린이 오나시스의 미망인이기 때문이다. 재클린의 묘비만은 이름이 두 줄이다.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라고 쓴 다음 줄을 바꾸어 ‘오나시스’라고 적혀져 있다. 오나시스라는 이름은 재클린과는 관계 없다는 듯이 내팽개쳐져 있다.
재클린이 오나시스와 결혼식을 올렸을 때 나는 “저 여자가 케네디를 두 번 죽이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오나시스 자서전을 읽어보니 재클린의 결혼조건과 지참금을 담판지은 사람이 시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다. 시동생이 형수의 재가를 돕기 위해 상대방과 협상한다? 더구나 형수가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것도 요지경이다. 재클린이 오나시스와의 결혼조건으로 받은 돈은 300만달러며 그것도 현찰이다.
오나시스의 결혼은 곧 파경에 이르렀으며 그는 친구에게 “재클린과의 결혼은 내 일생의 최대실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미망인인 재클린에게 유산이 넘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친구 국회의원들을 동원, 그리스의 재산상속법을 고쳤을 정도로 재클린을 미워했다. 그리스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재산의 4분의 1을 미망인이 차지하도록 되어 있는데 법을 개정해 외국인 국적을 가진 부인은 이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고쳐 놓았다.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오나시스 임종을 지켜본 것은 딸 크리스티나였으며 재클린은 당시 뉴햄프셔에서 자녀들과 스키휴가를 지내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다. 남편의 임종이 가까운데도 스키를 타는 여자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자식을 위해 인정사정없이 남자를 버리는 재클린의 기질은 어머니를 닮은 데가 있다. 증권브로커인 재클린의 아버지는 1929년의 증권파동으로 재산을 날렸으며 살림이 어려워지자 재클린의 어머니 자네트 리는 다른 돈 많은 남자와 재혼해 재클린을 키웠다. 그 남자가 죽자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해 일생 3번 결혼하는 기록을 세웠다. 재클린이 자신의 사생활을 극도의 비밀에 부친 것도 이 때문이다.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는 말, 장가가는 남성들이 유의해야 할 금언이다.
재클린이 죽었을 때 조사를 읽은 사람은 재클린과 동거하던 남자친구 모리스 템펠톤(뉴욕 보석상인)이었다. 이것도 이해가 안된다. 케네디 옆에 묻히는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동거 남자가 조사를 낭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같은 미국문화가 나에게는 아직도 납득이 안된다. 오늘 알링턴의 케네디 묘역을 둘러본 후 내린 결론은 “나는 미국화 되려면 아직 멀었네”였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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