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릿 투자은행들의 붕괴로 시작된 불길한 뉴스의 쓰나미는 3,000마일 떨어진 팜트리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의 스탠포드대학 캠퍼스에도 여지없이 몰아쳤다. “매일 매일 더 나빠지는 듯합니다”라고 벤 슬룹(29)은 걱정스럽게 말한다. 애틀랜타 출신인 그는 미래 재계의 스타 산실로 알려진 이곳에서 MBA 과정을 공부 중인 740명 중 하나다. “이젠 회사에서 나가라면 다른 데 가지, 하던 시절이 가버린 겁니다” 명문대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만큼 졸업 후엔 뉴욕의 파이낸싱 회사로 갈 작정이었던 그는 계획을 바꾸었다. 현실에 뿌리내린, 작아도 보다 확실한 직장을 찾으려고 한다. 지난 여름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소비자 청구서관리를 돕는 회사에서 일했는데 그런 정도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문대 MBA과정 학생들 월스트릿 위기 파장 관망
돈·보람 함께 추구하는 60년대 가치관 회복 기회로
“이번 위기를 보면서 보다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의 한 부분이 되고 싶거든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 같은 60년대의 정서는 80년대에 들어 “탐욕은 좋은 것”(Greed is good.)이라는 주문에 밀려났었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 ‘월 스트릿’에서 부패한 스탁브로커 마이클 더글러스가 내뱉으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그러나 너도나도 이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닥치는대로 부를 움켜쥐던 시대는 지금 사라져 가고 있다.
“이번 위기가 사람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도록 하는 계기가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뉴저지 출신 개렛 밀러(26)는 말한다. 스탠포드에 오기 전 그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미녀와 야수’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 일했었다.
오하이오에서 온 MBA동급생 케이트 잭슨(26)은 지난 몇 달동안 가족이 운영하는 교육관련 회사 ‘리듬, 라임, 리절트’에서 근무했다. “파이낸스 계열에 돈이 줄었으니 앞으론 꼭 그 분야에 맞는 사람들이 진출하겠지요. 전에처럼 요트를 사기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좋아하면서 잘 살기 위해서요”
와우. 요즘의 20대는 ‘탐욕’을 버린 것일까?
“글쎄, 아닐걸요, 탐욕이 긴 동면기에 들어갔다고 해둡시다”라고 포춘 매거진의 편집장 앤디 서워는 말한다. 그는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에 ‘탐욕의 대가’라는 제목으로 금융위기에 관한 분석문을 기고한 바 있다.
“탐욕은 우리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성향이 있습니다. 자동차가 그 예라 할 수 있어요. 70년대에 대형차를 몰다가 오일쇼크가 닥치자 갑자기 도요타 소형차가 쿨한 선택이 되었고 개스값이 떨어지니까 90년대엔 대형 캐딜락 에스칼레이드가 거리를 누볐지요. 문제의 열쇠는 그 사이에서 시간을 갖는 겁니다. 단숨에 검약에서 탐욕으로 건너뛰기는 힘드니까요”
서워편집장은 현재의 비즈니스 전공 학생들은 다시 ‘탐욕’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보다 친절한 모습으로 포장된 탐욕일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예를 들자면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 웹사이트를 신설해 남도 돕고 자신도 그 과정에서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다. “난 요즘 세대에 감탄합니다. 이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훨씬 사회의식이 강합니다. 그러면서도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교외지역에 멋진 집은 기본으로 생각하지요”
탐욕 찬양문화에서 개인의 성취감에 비중을 두는 분위기 전환은 이번 금융위기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더 네이션’과 ‘롤링스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그라이더는 말한다. “금융위기가 잘 왔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동안 월스트릿을 장악해 온 잔인하도록 무관심했던 가치관에서 이 나라를 구해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지요. 어찌 보면 지금은 20대에게 해방의 시기입니다. 잠깐 멈추어 서서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이지요. 한번 밖에는 못사는 인생이잖아요”
위기 발생 이전에도 요즘 세대의 이같은 경향은 조금씩 감지되어 왔다. 그들은 닷컴산업의 흥망을 지켜보며 성장했고 일생 중 서너번의 직업전환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베이붐세대 부모들의 사치스런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했지만 소비주의가 충족감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요즘 가장 명석한 최고의 인재들을 스카웃하려면 회사가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관심을 갖거든요.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위해 자산을 활용하고 사원들에게 비영리 봉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약속을 하는 회사들이 많아졌습니다”라고 전국 자원봉사 프로그램 아메리코의 데이빗 아이즈너 회장은 설명한다.
월스트릿에서 헤드헌터로 뛰다가 1년도 채 못되어 그만두고 아메리코에 들어간 로버트 포가티(25)는 요즘 뉴올리언스에서 자원봉사 코디네이터로 일한다. 연봉은 8만달러에서 1만달러(하우징 제공)로 줄어들었지만 대차대조표의 숫자 아닌 사람들의 삶에서 일의 보람을 찾는 성취감은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만족해한다.
스탠포드 MBA과정 학생들도 자신들의 장래를 크게 우려하지는 않는다. 이들 명문대 졸업생에게는 취업시장 전망이 그리 나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떼돈 버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일과 사회봉사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한 길을 얼마든지 열릴 것이라고 이들은 확신한다. 내년 여름 페이스북에서 일하기로 되어있는 앨도 킹(29)은 구글의 비즈니스 분석가 출신답게 2010년 졸업반의 전망이 그리 장밋빛은 아니라고 예상한다.
“모든 세대는 전 세대가 남겨준 부조리를 바로 잡아야하는 의무를 지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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