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소파에서 편하게 포즈를 취한 조승훈·영희 부부. 책 속에 빠져사는 두 사람은 4,000권이 넘이 책을 소장하고 있다.
코미디언 마거릿 조(Margaret Cho·40)는 그다지 예쁜 한인 2세는 아닐지도 모른다. 몸에 요란한 문신을 하고, 게이들의 열렬한 옹호자이며, 무대에서 파격적이고 직설적인 농을 해대는 여성, 때로 한인 1세 부모들의 서투른 영어와 한국식 문화를 조크의 대상으로 삼는 그녀를 우리는 어떤 눈으로 보아야할 지 조금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마거릿 조는 ‘스타’라는 사실이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스탠드업 코믹에 대한 인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한인 2세 여성이 스타로 추앙받는다는 사실, 특히나 젊은 백인 남성들이 그녀의 속사포 같은 입심에 ‘꺼뻑 넘어간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여름 방영된 VH1의 리얼리티 시리즈 ‘더 조 쇼’(The Cho Show)는 이러한 마거릿 조의 모습을 다양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1994년 ABC의 ‘올 아메리칸 걸’의 실패를 ‘설욕’했다고 팬들이 환호했을 만큼 인기를 끌며 높은 시청률도 기록했다. 30분짜리 7개 에피소드가 제작된 이 쇼에는 마거릿 조의 부모 조승훈씨와 영희씨도 출연했다.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귀여운 노부부 한쌍. 마거릿 조가 흉내냈던 억양 있는 영어와 제스처를 가졌지만,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이지적이고 여유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무척 궁금했다. 마거릿 조는 도대체 어떤 여성이며,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40년간 살던 북가주를 떠나 샌디에고 인근 샌마르코스의 조용한 은퇴촌에 정착했다는 조씨 부부를 어렵사리 연락하여 찾아갔다.
‘왕성한 지적 탐구’ 즐기는 아버지 빼닮아
사람과 일에 대한 사랑으로 ‘웃음’ 만들어
“‘더 조 쇼’ 촬영은 너무나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모란이(마거릿의 한국이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지 직접 볼 수 있었으니까요. 30분짜리 쇼 하나를 찍느라고 70-80명의 크루가 움직이는데, 다들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던지 헤어질 때는 눈물 흘릴 정도로 정이 들었죠. 늘 바빠서 일년에 몇 번 못 보던 딸과 7주 동안이나 같이 지낸 것도 행복했고, 제작팀이 최고 대우를 해줘서 아주 즐겁게 지냈습니다”
71세 동갑인 조승훈·영희씨는 전형적인 한인 1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964년 유학으로 도미해 샌프란시스코에서만 40년을 살아온 이력이 말해주듯 꽤 많이 미국화된 모습이지만, 나이 들수록 더 분명해지는 회귀본능처럼 한국 냄새 물씬 풍기는 노부부의 모습이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별난’ 딸은 ‘별난’ 부모에게서 나오는 법. 특히 아버지 조승훈씨는 ‘기인’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집안에 들어서니 세 가지가 눈에 띈다. 곳곳에 걸려 있는 그림 일곱점이 모두 화가 안영일씨의 작품이라는 것, 한쪽 벽을 채운 영문서적 500여권이 모두 경제에 관한 책이라는 것, 또 다른 쪽 벽에는 피아노음악 CD만 무려 1,000장이 넘게 쌓여 있다는 것…
직접 커피를 끓여주는데 맛있다고 했더니 커피 한잔을 제대로 끓이기 위해 그가 탐독한 6권의 책을 꺼내 보여준다. 한번 필이 꽂히면 그쪽 방면에 전문가가 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보았다. 하긴 칠순이 넘은 나이에 포셰 카레라 6단 기어 스포츠카를 모는 일이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거의 30년 포셰를 탔다는 그는 스포츠카와 기계에 관해서는 전문가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날개가 없어 못 날지, 포셰는 비행기와 같습니다. 시동을 걸면 엔진 6개가 익사이팅하게 몸을 감싸면서 한껏 밀어주는 게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 같아요”
아마 이러니까 딸이 명문고에서 퇴학당하고 대학을 중퇴하고 코미디언이 되는 일을 막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이래서 UC리버사이드 영문과를 나온 아들(Hahn Cho·한얼·35)마저 연기를 하겠다며 연예계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지켜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집안이 딴따라 집안이냐 하면 천만에 말씀.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인 가문 출신이다. 마거릿 조의 외할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 내각에서 사회부 장관을 지냈고 한국 노동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전진호씨이고, 할아버지 조명석씨는 성결교회 목사였다.
아버지 조승훈씨는 고대 법대를 나와 64년 도미,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MBA를 마쳤고 메트로폴리탄 라이프 보험회사의 감사로 15년 근무했다. 어머니 영희씨는 서울 문리대 불문과를 나와 숙명여고에서 5년간 교편을 잡았으며 미국에 와서는 커피샵을 10년 이상 하면서도 아이들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고 방과 후에는 반드시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자녀 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더 조 쇼’의 세트에서 마거릿 조와 어머니 영희(오른쪽)씨. 왼쪽은 마거릿이 늘 데리고 다니며 함께 출연하는 셀레나 루나. 3피트 10인치의 난장이여인에게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조승훈씨는 198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설 분야로 유명한 ‘페이퍼백 트래픽’이라는 서점을 인수했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던 그는 그 서점을 10년동안 운영하면서 책 분야의 전문가가 됐고, 마거릿은 서점 2층에 있던 코미디 클럽(‘The Rose & Thistle’)에 드나들며 자주 마이크를 잡았던 경험 덕에 코미디언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조씨는 서점을 매각한 후 지금까지 한국의 대형 서점들에 미국 책을 수출하는 도매업을 하고 있다. 책을 얼마나 좋아하고 많이 읽는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한국 신문들에 오랫동안 미국책에 관한 서평을 썼고, 라디오 방송에서 고정 코너를 맡아 책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직접 책을 집필중이다.
현재 소장한 책이 4,000권이 넘는데 놀라운 것은 마거릿은 5,000권 이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는지 마거릿 조는 2003년 미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의 셀러브리티 모델로 뽑혀 그녀의 포스터가 전국 도서관을 장식하기도 했다. 모란이는 굉장히 조용한 딸이었다고 한다.
조용하긴 해도 주관이 너무나 뚜렷하고 독립적이며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도전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그애가 하는 코미디쇼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실수할까 봐 지켜보는 게 굉장히 힘들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인조이 합니다. 한 시간 두 시간씩 관객 전체를 혼자 갖고 노니까요. 그렇게 재미있게 잘 할 수가 없어요”
사실 말이 코미디지 한 시간씩 혼자 무대에 서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웃긴다는 일이 보통 일인가? 웬만한 입심이나 몇가지 레퍼터리로는 턱도 없는 일, 엄청난 순발력이 요구되는 한편 머리가 보통 좋지 않고는 쉴 새 없이 조크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조씨 부부는 딸에 대해 조심스럽게 ‘천재’라고 표현한다. “관찰력이 대단하고, 생각이 깊고, 뭐든지 그냥 넘기지 않으며, 항상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더 조 쇼’의 마지막 일곱 번째 시리즈는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를 찾아가는 에피소드였다. 이때를 맞춰 개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2008년 4월30일을 ‘마거릿 조 데이’로 선포했고, 그녀는 고 2때 퇴학당한 로웰 하이스쿨을 찾아가 후배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왜 퇴학당했느냐고 물으니 고교시절 2년동안 체육시간에 한번도 출석을 안했다고 한다. 대신 그 시간에 드라마 클래스에 들어갔던 그녀는 퇴학당하자 “내 학교가 아니다”며 미련없이 박차고 나와 예술학교로 전학했고, 커뮤니티 칼리지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서 드라마 공부하다가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모란이가 처음에는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아시안으로서는 성공할 배역이 없다는 것을 알고 코미디로 돌았죠. 사실 연기보다 어려운 게 스탠드업 코미디예요. 시끄럽고 산만하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반응도 없는 코믹 클럽에서 성공했다는 것이 대견합니다”
조승훈씨는 ‘더 조 쇼’ 마지막편에서 로웰 고교생들에게 딸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모란이는 고교도 중퇴했고 대학도 졸업 못했지만 자기 분야에 관한 전문지식이 있고 자기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했다. 또 모란이는 ‘사랑’이란 말을 많이 쓴다. 자기 일에 대해, 이웃에 대해, 사람에 대해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만이 일도 즐겁게 할 수 있고 자부심도 강하며 좋은 쇼도 만들 수 있다” 전문지식과 사랑, 그 두 가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분명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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