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밝히기에는 다소 부끄럽지만 나는 거의 기계치에 가깝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도시인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지만, 빛의 속도 처럼 쏟아져 나오는 온갖 전자 제품들에 관심도 별로 없는 편이고, 약속이 생기면 수첩에 적는게 편한 종이세대이다.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아이폰이 내 손에 쥐어져도 나에게는 무용지물이며, 남편의 휴대전화는 아예 걸려오는 전화도 받을 줄 모른다. 내 휴대전화는 전화기를 열면 통화가 되는데, 남편 것은 뚜껑도 없고 소리는 계속 울려대는데 대체 뭘 눌러야 하는지 보이지도 않아 마냥 난감해진다. 컴퓨터도 기본적인 것만 사용할 줄 알고 그것을 크게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중문화를 즐기려면 컴퓨터를 능숙히 다룰 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편하고 흥미로운 기계들이 나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니 예전 글자 모르는 까막눈 문맹의 삶이 한평생 얼마나 캄캄하고 답답했을지 이해되며, 나 같은 기계치는 인생살기 점점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눈부신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힘겨운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켰고, 삶은 편리해져서 인간의 이기심을 끊임없이 충족시켜 주었다. 현재의 우리들은 몇 백년전 200 마리의 말을 먹여 기르고 하인 수십명을 부리며 살던 소수 귀족층만이 누릴 수 있던 안락함을 쉽게 누리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물질, 기계문명의 발달과 삶의 편안함이 행복함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 듯 싶다. 세계에서 국민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낮은 빈곤층, 훌륭한 교육 시스템과 의료제도, 정신적인 행복함 등, 물질적 풍요로움 보다는 개인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제도와 정신적인 행복을 중시하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그만큼 더 외로워지고 소외되는듯 하다. 요즘 화제인 영화 ‘아비타’도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의 삶을 통해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어떤 삶도 나름대로의 가치와 조화, 아름다움과 행복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는 ‘Personal computer’라는 시로 컴퓨터를 이렇게 예찬하고 있다.
‘새로운 시간을 입력하세요/그는 점잖게 말한다/노련한 공화국처럼/품안의 계집처럼/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없습니다/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그렇게 그는 길들인다……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친절하게도 그는 유감스러운 과거를 지워준다/깨끗이, 없었던 듯 지워준다/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박거리는/친구보다도 낫다/애인 보다도 낫다/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이게 사랑이라면……’
이제 인간의 육체적 소통과 영혼의 교감인 섹스를 할 수 있는 성인용 여자 로봇 ‘락시’가 나왔고 남자 로봇 ‘락키’도 곧 나올 예정이라는 놀라운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몇 달 전에 보았던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Surrogates’ 가 생각났다. 자신을 닮은 로봇이 직장에 나가 일을 하며 모든 일상 생활을 대신 하고, 진짜 사람들은 집에서 컴퓨터와 연결된 채 누워 편안히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영화였다. 몇십년 전에는 상상만 했던 기계문명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 미래 언젠가 영화 속의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찔해졌다.
동네 골목길에 모여 친구들과 뛰어 노는 대신,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페이스북으로 수다를 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아이는 몇시간 동안 나의 아이들과는 말도 안하며 들고온 게임기에서 눈과 손을 떼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왠지 가슴이 답답해지는건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나 혼자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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