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시어머님께서 “얘, 너의 친정아버님께서 얼마 전 삼베 두루마리를 갖고 오셔 도포베라 하시며 두고 가셨다. 난 그걸 잘라 밥상보를 몇 개 만들어 썼는데 왠지 마음에 걸려 너오면 물어 보려 했다”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라 “어머니 그걸 보여주세요”라고 했다. 어머님은 남은 삼베 두루마리를 보여 주셨다. 친정가풍으로는 딸 혼인시킬 때 꼭 준비해 둘 것이 사위 도포였다. 도포는 장사 때나 제사때 혼인한 남자들이 입는 제복이다. 요즘은 손으로 짠 삼베는 거의 보기 어렵다. 나는 얼른 두루마리를 받아 지금도 간직하고 있으며 어떻게 어머님 정성을 보람 있게 쓸 수 있을까 하고 고심 중이다.
나는 남편의 제사를 아직도 한국에서 지낸다. 한국에서 갔고 한국에 묻혔고 시어머님도 아직 생존해 계시니 쉽게 한국을 정리하지 못하다 보니 벌써 20년이 되었다. 미국엔 장성한 자식이 셋이고 손자 손녀도 셋이다. 나도 70이 넘고 보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깊어진다. 한국서 우리 집 제사 때는 친정 큰 동생과 막내 시누이와 조카들이 모여 제군이 많고 음식도 푸짐하여 디너파티 같다고들 한다. 친정 큰 동생은 장남이라 조상으로부터 떠맡은 제사도 많고 철철이 다가오는 명절차례도 많이 지낸다. 나는 그 동생이 아니면 제대로 제사도 못 지낸다. 매년 제사 때는 강릉에 잇는 친정 큰 올케가 제사음식을 준비하여 동생과 조카 편에 보낸다. 한번은 함지박에 제사에 쓸 절편을 가득이 담아 보냈다. 함지박을 보니 옛날 어머니가 내 결혼때 주려고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제사후 올케한테 전화로 그 함지박은 내가 어머니 유산으로 간직하겠다고 했다. 올케는 응석부리는 말로 “저 다시 떡 안 해 보낼래요”라고 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가 방문하여 그 함지박을 보더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자기 컴퓨터 블로그에 띠워 친구들이 내 소식을 듣고 함지박 이야기도 들어 어머니의 유산이 유명해 졌다.
침대보로 썼던 비단 이불감도 잘 손질하여 그냥 허술하게 쓸게 아니라 귀중한 어머니의 정성을 좀 더 보람 있고 뜻있게 쓰겠다고 삼배 두루마리와 함께 한국에 갖다 두었다. 내가 항상 즐겨가는 한복집 아주머니의 의견을 듣고 내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유산을 전하리라 생각중이다. 철모르던 어린시절때 어머님의 정성에 무관심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도 또 어머니처럼 후손에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나이 탓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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