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워지면, 일반적으로 이혼율이 떨어진다. 물론 금전적인 이유에서다. 산술적으로 말하자면 이혼은 ‘뺄셈’이고 ‘나누기’이다. 찢어지기에 앞서 서로 가진 것을 덜어내고, 갈라야 한다.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궁핍한 커플에게는 빼고 나눌 게 거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서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며 불편한 동거를 지속하는 ‘이혼 대기조’가 늘어나게 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지만 “빵이 있어야” 살 수 있듯, 돈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지만 돈 없이 행복감을 느끼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실직이라든가, 모기지 체납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들면 결혼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타격을 입는다. 피부로 느끼는 경제상황이 악화될수록 결혼생활의 만족감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응답자 40% 이혼하고 싶지만 돈 없어 ‘연기’
30%는 혹독한 경기침체로 오히려 결속 다져
이와 관련해 버지니아 대학의 국립 결혼 프로젝트(National Marriage Project)는 지난 12월과 1월에 걸쳐 18세에서 45세 사이의 미국인 기혼자 1,197명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규모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서베이에 참여한 기혼자들 가운데 금전적 스트레스가 없다고 답한 기혼자들의 87%는 현재의 결혼생활이 “대단히 행복”하거나 “행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 경제적 고민거리가 있다고 응답한 기혼자들 가운데 결혼생활이 “대단히 행복”하거나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의 비중은 84%로 떨어졌다.
심각한 금전적 고민거리가 두 가지 이상인 사람들의 경우 결혼생활이 “행복하다”는 대답은 67%에 그쳤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1이 각종 청구서를 처리하느라 쩔쩔매는 것으로 나타났고, 12%는 주택차압과 모기지 체납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실직과 봉급삭감, 근로시간 단축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응답자도 전체의 29%에 달했다. 최소한 절반 이상이 한 가지 이상의 재정적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두 가지 이상의 금전적 고민거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응답도 20%나 됐다.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별거 혹은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고 고백한 기혼자가 전체의 5%에 달했는데 이들 중 40%가 경제사정을 고려해 ‘실행’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한 가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응답자들의 30%가 혹독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결혼에 대한 커미트먼트(commitment: 책임감, 확고한 의지, 헌신)가 오히려 강화됐다고 털어놓은 부분이다.
극심한 불황은 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서민들이 살림살이는 더욱 고달파지고, 경제적 고민거리가 하나 둘 끼어들면서 결혼생활에서 맛보는 행복감은 점점 줄어든다.
여기까지는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다. 이 논리를 그대로 쫓아가면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이혼율은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경제난국에는 ‘나눗셈’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갈라서기를 미루는 커플들이 증가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이혼율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다는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다. 이번 조사에서도 이혼을 고려중인 기혼자들의 40%가 경제난을 고려해 결행을 미룬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기혼자들 가운데 무려 30%가 경제적 시련을 통해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결혼에 대한 커미트먼트를 강화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일반상식’에서 비껴나 있다. 이를 종합을 해보면 불황이나 경제적 어려움은 잠정적으로 나마 이혼을 미루는 주된 이유가 되는 동시에 결혼생활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기도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브리검영 대학의 E. 제프리 힐 부교수는 “돈 문제가 결혼생활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게 통설이지만 진짜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느냐”라고 말했다. 힐 부교수는 “행복하기만 한 결혼생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기본적으로 결혼에 대한 확고한 커미트먼트를 지니고 있다면 다른 것은 극복 가능한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여건이 호전되면 이혼율이 급등할 것으로 전망한다. 갈라서기를 가로막아 온 경제적 한파의 기세가 꺾이면 때를 기다려온 이혼 대기조들이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대 국립 결혼프로젝트의 디렉터이자 사회학 부교수인 W. 브래포드 윌콕스도 이들의 전망에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이혼을 연기한 40%의 기혼자들 가운데 마음을 바꾼 이들도 더러 나오겠지만, 나 역시 경기회복세가 본격화되면 이혼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극심한 불황을 통해 결혼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관계가 두터워진 커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사시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윌콕스 부교수는 “재정적 문제에 직면했다면 배우자와 단 둘이서만 해결책을 찾으려 고심할 게 아니라 가족과 친지, 그 밖의 지원그룹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과거 다른 연구에서 조직적인 종교 활동이 결혼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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