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지난 4월에 결혼한 영국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서 신부 케이트 미들턴은 알렉산더 맥퀸의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물론 작년 2월 사망한 영국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수제자 새라 버튼이 디자인한 드레스다. 하지만 세계 패션계에 다시 한번 알렉산더 맥퀸의 이름을 알렸다. 지난 5월4일부터 오는 8월7일까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2층에서 알렉산더 맥퀸의 회고전 ‘잔인한 아름다움’(Savage Beauty)이 열리고 있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 이 회고전을 보러 갔는데 꼬리에 꼬리를 문 줄은 좀체 줄지 않아 한시간 반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몇 번이고 그 줄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이기고 드디어 회고전에 발을 디뎠는데 입구부터 완전 ‘짱’이었다.
유리조각 상의에 타조의 깃털을 이어 만든 새빨간 드레스, 조개껍질 수천 개를 세로 스트라이프로 이어 만든 우아한 살구색 롱 드레스의 실루엣이 그야말로 감성 그 자체였다.
날카롭게 커팅 된 블랙 재킷과 수트는 ‘나는 내가 디자인한 옷들이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기를 기대한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였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옷자락이 어떤 물결을 이루는 지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회고전의 한부분도 2001년 패션쇼 무대처럼, 유리진열관 안의 레드와 블랙 드레스를 보던 관객
은 갑자기 진열장 유리가 거울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춰 순간적 충격을 받게 했다. 우아한 레이스와 풍성한 러플, 부드러운 가죽과 금속성 갑옷, 벨로아 자수와 시폰 소재 드레스가 파격적인 머리 장식과 기발한 신발 등과 어울려 모험과 가학이 넘치는 창의력이 참으로 눈부셨다.
그리고 그로테스크 했다. 100여 전시작에는 알렉산더 맥퀸의 천재성과 평생을 벗해온 우울증, 죽음과의 타협이 언뜻 언뜻 보였다. 해골 프린트로 전 세계 패션 매니아의 각광을 받아온 그는 작년 2월11일 런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달리 사랑했던 어머니가 사망한 지 1주일 후였다. 겉으로는 과감하나 내적으로 유약하던 그에게 늘 용기를 주던 어머니였다. 어머니 죽음에 대한 충격, 우울증과 동성애인과의 실연 등 복합적 원인으로 인한 자살로 마감한 그의 인생은 겨우 마흔이 끝이었다.
런던 태생으로 2003년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상을 수상하면서 아메리칸 핫 브랜드 중 하나로 떠오른 알렉산더 맥퀸, 아메리칸 사이코 패션으로 불리는 그의 첼시 매장에 지지층이 몰려들고 회고전에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드니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사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중에는 한국에서 왔거나 한국계 미국인 디자이너가 많다. 뉴욕패션쇼에 두리 정, 리처드 채, 크리스 한, Y& KEI, 신초이, 주사라라 등 10여명의 한인들이 오래 전부터 참여하고 있고 랄프 로렌, 아르마니 등 뉴욕내 유명패션회사에 소속된 한인디자이너도 100여명이다. 파슨스와 FIT의 외국인 재학생 중 25~30%가 한국계일 정도다.
창조성과 실용성을 구비한 디자인, 국제적인 감각 등을 갖춘 디자이너에 대한 정부(‘컨셉트 코리아’보다 더 확실한 행사 필요)와 기업 차원의 장기적이고 적극적인 후원이 따르면 우리도 언젠가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메트 뮤지엄에서 회고전을 여는 한인디자이너가 나오지 않을까. 그러자면 디자이너가 봉제와 바느질의 기본적인 재주만 지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알렉산더 맥퀸처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그는 관객의 환호를 벗어나 홀로 집으로 돌아오면 염세주의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도 수천권의 책을 읽고 사람의 몸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여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다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알렉산더 맥퀸, 영국 디자이너인 그의 회고전이 열리는 미국 메트 뮤지엄, 다시 한번 가고 싶다. 그의 번뜩이는 영감과 재기발랄한 디자인, 죽음과 악수한 그의 절망과 고뇌도 함께. 이 더운 여름, 졸음과 나태함이 확 달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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