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를 배워 가르치는 단계를 나에게 묻는다면 12년은 배워야한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한 가지 서체를 터득하는데 3년 정도는 걸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람을 가르치려한다면 해서‧ 행서‧초서‧예서‧전서 정도는 써야한다. 한 가지 체를 터득하고나면 그 다음 것은 자연히 빠르게 익혀진다. 왜 12년을 잡는가 하면 서예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다 초보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서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 초서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 예서를 배우고자 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도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행서나 초서, 예서를 배우고자 처음부터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먼저 해서를 제대로 배웠는지 먼저 본인이 써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나는 쓰는 것을 봐 운필이 잘못될 경우는 처음부터 배우라고 권한다.
글씨란 알고 보면 간단하다. 주종을 이루는 획은 가로 긋기와 세로 긋기이다. 가로 긋기 세로 긋기만 제대로 하면 획수를 익히기가 아주 쉽다. 대개 사람들이 오면 곧바로 글씨부터 쓰고 싶은 마음에 획수를 처음 가르쳐주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연습을 게을리 하며 대충대충 넘어간다. 그리고 글씨를 쓸 때 안 된다고만 불평한다. 붓을 탓하다가 먹을 탓하고 종이를 탓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예전에 배운 기초를 연습하라고 권한다. 이미 글의 진도를 나가면서 기초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배우러 오는 사람이라면 체본을 받아 아무리 못써도 21번은 써봐야 하는데 시간 없다는 핑계로 한 번이나 두 번 써보고 넘어가려한다. 취미 없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를 너무 오래 연습하라하면 그나마도 싫증 낼까봐 진도는 나가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도 안타깝다. 급한 생각을 버리면 글씨가 달라지련만 사람들은 급한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필요 없다. 그나마 라도 세월이 흐르면 조금 낫다. 가르치는 입장에선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바램이고, 배우는 입장에서는 어서 빨리 모든 것을 다 배웠으면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은 순서와 연습 그리고 세월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한 글자라도 열심히 연습한 것만이 자기 것이다.
나는 서예나 묵화를 배우면서 선생님에게 체본 해달라는 요구를 해 본적이 없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체본을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연습하고 있으면 선생님께서 내 주위를 오가시며 보시다가 되었다 싶으면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해주시기 때문이다. 나를 가르친 묵화 선생님은 나에게 미안해하신다. “다른 사람들은 체본을 하나라도 더 받아 가려고 아우성인데 비하여, 법장스님께서는 요구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체본을 많이 못해 주었습니다”하시는 것이다. 사실 오랜 세월을 많은 선생님들에게 배워 왔지만 나에겐 체본이 그리 많지가 않다.
무엇인가 한 가지 이루려면 먼저 급한 생각을 버리고 차분히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대로 무심코 따르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진다. 본래 나는 서예나 묵화를 가르치려고 공부한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했기 때문에 무심코 빠져들었는데, 1978년 첫 개인전 이후 배우러 오는 자들이 생겨 자연스레 사람들을 가르치게 됐다. 그러나 지금도 배우고 익히는 자세로 항상 정진하려 노력한다. 만족을 느끼는 순간, 거만과 아상이 싹터 더 이상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Nov 10. 2011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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