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랴에 고넬료 라고 하는 로마의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방인 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인’을 초월(beyond Raman)하여 살았습니다. 이방인 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God fearer)으로 자신의 종족을 초월하여 살았습니다. 백부장으로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주둔하며 살면서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여 신앙으로 종족과 언어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기쁘셔서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청하여 심방받고 예배드리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제 6시 기도시간에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제 6시면 오늘의 12시 정오여서 배가 고팠습니다. 환상이 보였습니다. ‘땅에 있는 각색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잡아먹으라’(행10:11-13)고 말씀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속되고 깨끗지 않은 것을 내가 먹을수 없습니다’(행 10:14)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종들이 와서 고넬료의 초청을 전달하고 그제야 베드로는 주님이 자신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시는 주님의 초청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도저히 못먹겠다고 고집부렸던 자신의 교만과 편견을 버리고 무할례자인 이방인의 집 고넬료의 집에 간것입니다.
영국문학중에 최고의 걸작중 하나로 뽑히는 작품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입니다. 다아시의 오만함(Pride)에 가득찬 말을 들은 엘리자벳은 다아시에 대한 첫인상을 아주 나쁘게 갖게 됩니다. 후에 다아시가 엘리자벳을 사랑하며 다가오지만 엘리자벳은 그에 대한 편견(prejudice)이 그의 사랑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어옵니다. 교만은 편견을 부르고 편견은 또 다시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한 교만은 편견을 불러왔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이다’(행 10:28) 라는 편견은 유대인의 교만에서 비롯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편견은 유대인을 계속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대인을 지배하던 로마인 백부장 장군은 피 지배인이 믿던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세례를 받고 교만에서 겸손으로 편견에서 포용으로 변화받았지만 아직도 베드로는 오만과 편견에서 놓임받지를 못하였습니다. 고넬료를 통하여 하나님은 베드로를 변화시킵니다. 보자기안에 있던 각색 짐승들, 즉 각종 이방인들을 오만과 편견으로 보았던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말라’(행 10:15)는 말씀을 세 번이나 들으며 고넬료를 만나며 베드로의 오만과 편견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한국인을 초월하는 ‘beyond Korean’을 살아갑시다.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서 우리 주변의 히스패닉,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어떤 종류의 다른 민족이다 할지라도 ‘보자기 안에 있는 각색인종의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사람들인데 우리가 오만과 편견으로 속되다 할수 없느니라’큰 소리로 들으면 삽시다. 디아스포라가 다민족, 다인종, 다세대, 다중언어, 다중문화가 함께 사랑안에서 세워져 가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이것이 오늘의 디아스포라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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