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크 펄먼(Yitzhak Perlman). 그는 이스라엘이 낳은 금세기 최고의 바이얼리니스트이다. 그가 금세기 최고의 바이얼리니스트가 된 것은 그의 음악적 테크닉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에 대한 그의 특별한 자세 때문이다. 한번은 뉴욕 링컨 센터에서 연주회가 열렸다. 그의 명성을 듣고 모여든 청중으로 에버리 피셔 홀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찼다. 무대가 올라가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자리 잡았다. 이제 주인공 펄먼이 등장할 차례이다. 누구나 펄먼의 연주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가 한번 무대에 나와 서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펄먼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부모 밑에서 1945년 8월 31일에 태어났다. 그런데 그가 4살이 되었을 때 중증 소아마비에 걸렸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그가 걸으려면 양쪽 다리에 의족으로 보조 장치를 하고 두 개의 크러치를 짚어야 만 했다. 연주를 위해 넓은 무대까지 걸어 나와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면 많은 수고와 시간의 여유가 필요했다. 그날도 펄먼은 늘 하던 대로 천천히 그리고 밝은 웃음을 띠우면서 걸어 나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몇 차례의 튜닝이 끝난 후 지휘자에게 눈짓으로 연주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벅찬 기대감으로 자리한 청중들은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와 함께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듯 막이 오르고 교향곡의 첫 소절의 도입부가 끝나고 둘째 소절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이었다. 갑자기 마치 누가 총을 쏜 것처럼 “탕-” 하는 괴음이 울리며 연주회장을 진동시켰다. 이게 웬일인가. 바이얼린의 현 하나가 끊어진 것이다. 놀란 청중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펄먼이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물으며 대답하느라 연주장은 시장처럼 소란스러워 졌다.
펄먼은 그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고 묵상하더니 곧 지휘자에게 계속하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줄 하나가 끊어진 채로 교향곡을 완주 하겠다는 신호였다.
청중들은 힘든 연주를 다 마치고 땀을 닦고 앉아있는 그의 의연한 자세에서 예술적 카리스마를 느꼈고, 진지한 얼굴 표정에서 품어 나오는 장엄한 분위기에 모두가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멈추지 않는 스탠딩 오베이션의 찬사가 물결치듯 장내를 출렁거리고 있었다. 펄먼은 두 손을 들어 흥분한 청중을 가까스로 진정 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나의 음악적 사명은 지금 나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음악을 창조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얍복강의 야곱처럼 고난이 축복으로 바뀔 때 까지 고난의 자리에서 그냥 물러서지 않는 것이 곧 나의 예술관입니다.” 말을 마친 펄먼은 다시 크러치를 집어 든 다음 환한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걸어서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당신은 리더인가. 잊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며 펄먼처럼 그대의 길을 의연히 가라. “하나님이여, 내가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기보다는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그것을 가지고 한 차원 더 높은 창의적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