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호 거사님과 함께
개운사에서 나는 중 고등 학생들을 지도할 때 여름과 겨울로 방학이나 연휴의 틈을 타 다른 사찰로 수련법회를 인솔하여 가게 되었다. 갈 때는 지도법사인 나만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안병호 거사님(불교 청소년 교화연합회 회장)도 함께 간 적이 많다. 안병호 거사님과 같이 잠을 자며, 아이들의 수련 시간을 짜고, 법문내용을 정리하며, 글짓기 대회의 심사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절과 운동시합을 벌여 상품도 주었으며, 불교의 지나온 과거이야기 또는 우리는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하여야하는가 등등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안병호 거사님은 안전양초 공장 사장님이시기에 바쁘시지만 어김없이 일요일이 되면 개운사 어린이 회를 위해서 과자를 한 아름 안고 오셔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법문을 해주시고 가시곤 했다. 개운사 절에 지도하는 스님이 계시던 안 계시던 상관하지 않고 법회시간 되면 지도하시고 밥 한 끼도 먹으려 하지 않고 그냥 가셨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베풀 뿐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내가 중고등 학생회를 지도하면서부터는 주지스님에게 말씀드려 점심공양을 하고 가시게 하였다.
안병호 거사님은 도道에 관한 호기심도 많아 여기저기 찾아다니신 것으로 안다. 말없이 청소년을 위해서 투자하시며 마냥 기쁜 마음으로 사시다 가신 분으로 기억된다. 거사님은 나하고 인연이 많아 아주 잘 마주쳤다. 내가 청산도장에서 단전호흡을 수련할 때도 나의 뒤에 입문하여 수련을 하셨고 내가 상주 달천리 토굴에 있을 때도 명허스님을 찾아온 일이 있으며, 내가 뉴욕에서 상운사를 개원하여 포교를 하고 있을 때도 한 번 찾아오셨다. 마지막 회향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지만 그러한 거사님을 더욱 가까이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거사님은 청소년 법회에 남다른 열정이 있어 여기저기 다니시다보면 몸이 지쳐 집에 돌아가는 즉시 쓰러진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쓰러지시니 무슨 일인가, 도대체 왜 그런가 하는 의심이 일어 부인께서 둘째 아들을 딸려 보내는 사건까지 있었다한다. 그러나 하시는 일이 모두가 남을 위한 일이니 더 이상 부인이 의심을 안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1970년대 초반, 서울이라고 해도 어린이 법회를 하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스님들은 본인들의 공부하기에 바빠 중 고등 학생회나 어린이들을 돌아볼 엄두를 못 냈으나 지금은 어느 절에 가나 들어볼 수 있는 삼귀의나 찬불가를 그 당시는 법당에서 노래로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생소하게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자기사업을 하시면서도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 봉사한 그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뿐더러 그 업적은 길이 남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앞서간 선구자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선구자가 없었던들 지금의 모습이 있었겠는가? 맨 처음 개화의 물결이 일어 법당에서 노래를 한다고 했을 때, 스님들뿐만 아니라 노보살님들의 눈에도 좋지 않게 비춰져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러나 그 시련의 고비를 넘어 요즈음은 불자들이 어딜 가나 법회 시에 당당히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노래로 하는 것을 보면 개화기 안병호 거사님과 함께 지도한 법사로서 참으로 마음 뿌듯하다. 적어도 종교인이라 하면 세상 변화와 함께 갈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개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Apr 19. 2012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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