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1545-98)의 467회 탄신일이다. 작년 4월에 한산도를 다녀왔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 통영에서 배를 타고 하늘 빛 보다 더 푸른 통영 앞 바다를 건너면 해무(海霧)에 가린 한산도가 의연한 자태를 드러낸다. 섬 포구에서 목적지 제승당(制勝堂)까지 가는 길가엔 동백꽃이 붉었고 뒷산 숲속에선 내내 뻐꾸기가 울었다.
한산대첩을 기념하는 제승당은 한산 바다를 향하여 정 중앙에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른쪽 앞에는 한산 넓은 바다를 향하여 수루(戍樓)가 우뚝 서 있었다. 수루 중앙에는 큰 북이 보였고, 앞 벽에는 장군이 읊었던 시(詩)가 고즈덕이 걸려있었다.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수루에 올라 한산 앞 바다를 내려 다 보았다. 거대한 원통 모양이었다. 장군은 당포 연안 견내량에 깊숙이 정박하고 있는 왜장 와키자카 함대를 원통 모양의 한산 앞 바다까지 유인 포위한 후 일격에 기습 섬멸했다. 장군은 한 번도 그들에게 진 적이 없었다. 23번 싸워서 23번 다 이겼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전술이다.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은 전술에서 나왔다.
한산대첩에서 장군이 쓴 전술은 “학익진(鶴翼陣)”이다. 그 당시 왜군 연합함대의 규모는 110척이 넘었고 수군의 수는 1만 명이 넘었다. 만일 이 전쟁에서 왜군이 이기면 그들의 육군 병력과 군수 물자를 전라남도 해안을 통하여 한양과 평양까지 단숨에 수송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은 분초를 다투게 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이순신은 한산 바다에서 왜군을 초토화 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상황에서 장군은 그때까지 아무도 사용한 일이 없는 낮선 전술인 “학익진”을 파격적으로 채택했다. 유인-포위-집중타격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학익진 전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장군은 수 백 번의 훈련을 거쳐 휘하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필승의 확신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순신이 탁월한 전술가라는 사실은 단 13척의 배를 가지고 130척이 넘는 왜군함대를 전멸시킨 명량대첩의 “일자진(一字陣)” 전술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1597년 9월 16일 이순신은 130척이 넘는 세키부네 휘하의 대규모 함대가 전라도 쪽을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비장한 각오를 한 장군은 조선 전 함대에 출정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 당시 동원된 아군의 배는 13척 뿐이었다.
이순신은 이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전술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안해낸 전술이 “한 사람이 막다른 골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고사를 인용한 “일자진(一字陣)”이다. 장군은 막다른 골목 같은 명량해협으로 적군을 유인하여 그곳에서 바닷물이 갑자기 역류하는 여울목 현상이 나타날 때 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가 당황한 적을 일시에 괴멸 시켰다.
이순신이 끊임없이 사색하고 연구한 것은 전술이었다.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막강한 적을 물리치기 위해선 탁월한 전술의 개발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때 마다 적군의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술을 창출함으로 그는 언제나 승자가 되었다.
한편 그 당시 선조를 위시한 조정의 리더십은 어떠했나. 너무 빈약했다. 그들은 실제와 거리가 먼 탁상 이론가에 불과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당파 싸움에만 열을 올리느라고 밑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정확히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못했다. 그래서 온갖 음모와 모함이 조정을 뒤흔들어 놓았고 류성룡과 이순신 같은 충신을 탄핵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근자에 이순신의 리더십이 빈번히 회자된다. 이순신은 외유내강, 겸손, 희생, 용기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지모와 전술의 사람이었다. 그의 비상한 지모와 전술은 깊은 사색의 삶에서 나왔다. 그는 말을 아끼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색형(思索型) 리더였다. 고고(孤高)한 수루에 올라 넓게 펼쳐진 한산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그걸 가슴으로 느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