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말이 무섭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를 통할 수 있는 방법은 말이 우선이다. 그래서 말이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란 형체를 볼 수 없지만 그 역할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느 기구보다 강하다. 때에 따라서 한 마디의 말은 칼이 되기도 하고 도끼가 되기도 한다. 말은 그 어느 것보다 사람 마음에 깊숙이 침투하는 무서운 도구이다. 그러기에 한마디 말에 기뻐하기도 하고, 한마디 말에 화를 내기도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의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것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그러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저 즉흥적으로 말을 하기도하며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 한마디를 주워 담을 수 없어 후회하기도 한다. 내가 그 말을 하지 않고 꿀꺽 참았었으면 좋으련만 어찌하겠는가!
어느 초하루 개운사에서 사시巳時(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기도를 하고 모든 불자님들하고 함께 점심공양을 하는데 유수길 노보살님께서 부르시기에 쳐다보니 “법장스님! 내 나이 많으니 언제 죽겠소? 내가 꼭 죽어야 할텐데!” “노 보살님 그런 것 생각하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에이! 그라지 말고 솔직히 말씀해 줘. 법장스님에게 한마디 꼭 듣고싶어!”하시는 바람에 무심코 손가락을 셋을 펴 보였는데 그 뒤로 좋아라 하시며 말씀하시고 다니시기를 “법장스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내가 3년만 있으면 간데, 그 스님 말씀은 틀림없어!”하셨다. 나는 엉겁결에 본의 아니게 그 보살님께서 가시는 길을 예언한 사람이 되고만 것이다.
그 이후 나는 포교를 더욱 열심히 하기 위해서 정릉에 각성포교원을 개설하여 가게 되었는데 이 노보살님은 나를 무척 좋아하셨지만 데려다줄 사람이 없어 정릉은 한 번도 오시지 못했다. 그럭저럭 3년이 된 해에 세상을 뜨셨다. 신도님들은 나에게 와서 “법장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유수길 보살님께서 3년 만에 가셨습니다.”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적중했다는 기쁨보다는 왜 내가 더 신중하게 하지 못했는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왜 내가 그 때 끝까지 모른다고 했었으면 좋았으련만, 무심결에 보인 나의 행동에 대해서 많은 후회를 하였다. 아무리 하찮은 이야기라도 믿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사실을 절실히 통감했다.
병이 없이 멀쩡하게 살던 사람도 믿을만한 사람이 곁에서 죽을병이 걸렸다고 한다면 일단 자신에게 참말로 병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 자신의 건강을 의심하게 되고, 자칫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혹시 죽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러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남에게 함부로 막말을 한다거나 저주를 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풍채 좋으신 유수길 보살님을 생각하면 개운사 옛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미국을 가게 되었다고 유슈길 보살님의 아들인 정교영 사장님께 연락했더니 영지버섯을 구해가지고 오셔서 나에게 주며 공항까지 배웅을 해주신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지만 어머님께 효성 지극하시던 정교영 사장님께 감사하는 마음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Jul 3. 2012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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