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유엔본부에서부터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까지 600km가 넘는 거리를 핸드 사이클로 종단한 한국 상이용사들의 쾌거는 군인 정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입을 모은다.
그러나 상이용사들의 멋진 모험이 현실이 되기까지 꿈을 잉태하고 그 꿈을 적극 후원한 사람이 없었으면 시작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핸드 사이클 미주종단 대장정’을 총지휘한 박상근 단장과 민맹호 부일교통 대표가 그들이다.
두 사람 모두 상이용사다. 박 단장은 1977년 강원도 화천의 ‘거진 대간첩작전’에서 총알이 가슴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고 38년째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민 대표는 월남에서 구정 기습 때 눈에 부상을 입어 다섯 번의 수술을 해야 했다. 이번 미주 종단 때 휠체어나 핸드 사이클을 타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여행하며 단원들을 도왔다.
“실제 미국에 와보니 상황이 많이 달라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미국에 오기에 앞서 두 달간 루트를 철저히 연구하고 외운 박 단장의 말이다. 모든 루트를 구글을 보며 골목까지 세세히 계획을 짰다. 그대로만 됐다면 눈감고도 단원들을 이끌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와 보니 자전거로는 여행할 수 없는 길이 제법 많았다. 또 대로는 경찰의 허가가 먼저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몰라 미주 한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낭패를 당할 뻔 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성공했습니다.”민 대표는 직접 휠체어를 타지 않았어도 누구 못지않게 단원들이 자랑스럽다. 사업적인 성공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까 고민하던 민 대표는 2005년부터 매년 20여명의 장학생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해 박 단장이 한국 종단을 계획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울컥 하더군요.” 자신도 상이 용사인터라 더욱 그랬다. 휠체어는 안타더라도 팔다리가 돼 주자고 결심했다.
6.25 격전지를 돌아보는 총 700km의 한국 종단에 함께 했고 이번에 미국에도 오게 됐다.
민 대표는 “사지가 멀쩡한 나도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인데 정말 대단하다”며 “이들은 다리가 없거나 불편한 사람들이지만 ‘희망’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부천시 평통 부회장인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기쁨을 배우고 난 뒤 상이군경 자활 후원회장, 여성축구단 후원회장 등도 맡아 주변사람들을 열심히 챙기고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죠. 한국전 참전 16개 연합국이 다음 방문 차례입니다.”핸드 사이클 대장정을 보은의 기회로 삼았던 박상근 단장은 여러 나라 6.25 참전용사 가운데서도 에티오피아를 먼저 찾을 생각이다. 사회주의 국가로 바뀌어 참전용사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여러분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해주기 전까지 박 단장은 모험이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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