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누구나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씨 뿌릴 때와 거둘 때… 10대에 해야 할 일… 30대 그리고 40대의 의무가 각기 다르다. 불혹이 넘어서도 감상에만 젖어있다면 이를 건강한 행복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쇼팽은 20대에 피아노 협주곡 2편을 남기고 더 이상 협주곡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즉 대곡보다는 즉흥곡, 야상곡 등… 그저 감상가는 대로, 건반가는 대로… 악상이 떠오르면 이를 오선지에 옮겼을 뿐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건강한) 꿈이 있는 예술가였다기보다는 게으른 방랑자였다고나 할까? 요즘으로 말하면 히피족이 바로 쇼팽이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나 방랑의 본능… 그리고 헌터의 본능이 있다. 즉 짝을 찾고, 먹거리를 찾기 위한 헌터의 본능이 있다면 반대로 동가숙서가식 떠도는 방랑의 본능이 있다. 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문제… 그리고 출구의 문제는 인생의 영원한 숙제이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폐병환자… 무기력한 폐인이기도 하였다. 즉 쇼팽의 음악에는 헌터적 본능이 없다. 감상으로만 점철된, 야성이 말소된 음악이라고나 할까? 쇼팽이 (대중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전쟁을 겪은 뒤) 20세기 이후 나타난 히피 사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의 폭력성… 즉 야성적인 감동, 정복자의 패기 등은 전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평화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신 쇼팽 같은 나른하고 감상적인 음악이 대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요즘이야) 쇼팽을 모르고서 피아노를 논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쇼팽은 모두 6개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남겼는데, 협주곡사에서 가장 빛나는 2편의 협주곡 외에 (모차르트의) 돈지오바니 변주곡 등이 있지만 모두 20대 이전의 작품으로, 그 후론 더이상 협주곡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쇼팽이 왜 협주곡에서 손을 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뿐… 쇼팽은 더 이상 위대한 예술가도, 부르투오소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피아노치는 사람으로 살다갔을 뿐이다.
겨울을 표현함에도 춥지 않고… 이별의 비애 속에서도 낭만이 살아 있는… 미학의 가을 바람… 쇼팽에게 과연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폴란드 사람이면서도 파리인이었고, 낭만파에 속했으면서도 당대의 음악가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쇼팽이야말로 어쩌면 영원한 이방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쇼팽의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방랑자가 된다. 가버린 첫사랑… 그리운 조국… 시니컬의 대가… 쇼팽은 바르샤바 음대 재학시 콘스탄티아라는 소녀와 사귀면서 그 감상을 협주곡 2번에 담기도 했다지만, 그의 음악은 대체로 피아노의 미학 속에 자신을 불태우고 함몰시켜갔던… 어쩌면 또 하나의 자신… 거울 속의 진실… 삶과의 이별을 그렸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이란 시간과의 랑데뷰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끝없이 흐르는 세월… 목적없는 방랑… 그 자체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길이란 언젠가는 돌아오기 마련이다. 터널의 끝이란 가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방황없이 과연 인생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절망에 대한 해답은 오로지 방랑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기에 앞서 당신도 한번 길을 떠나봄이 어떻겠습니까? 이별의 애수가 있는… 쇼팽의 음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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