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화계의 보물/사람들은 몰라도/아는 사람은 아는 우리 문화계의 국보/수많은 /그림쟁이의 스승”(박재동 화백)문학성 짙은 예술 만화를 창작해온 만화가 오세영 화백이 5월 5일 별세했다. 향년 61세.
평소 오 화백을 아꼈던 박재동(63) 화백이 5일 조문에서 “그리고 싶은 이야기/소중한 그 이야기 두고/왜 이리 가버리냐/…//우리 만화계의 보물/사람들은 몰라도/아는 사람은 아는 우리 문화계의 국보/수많은 /그림쟁이의 스승/철저히 공부했던/세계의 대가급 중의 한사람/재능만큼 수명까지는 우리가/가질 운이 없었느냐//온 하늘에/세영이 가득하구나!”고 애통해했다.
6일 ‘우리만화연대’ 측에 따르면 오 화백은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쓰러져 5일 오후 7시경 눈을 감았다. 김형대 작가 등 만화계 선후배 작가들이 어젯밤부터 빈소를 찾고있다. ‘미생’ 윤태호 작가는 부고 문자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갑작스런 비보에 비통해했다. 평소 어린이처럼 해맑고 거침없는 성품을 지녔던 오 화백이 어린이날, 만화계를 떠나면서 더욱 안타까워하고 있다.
오 화백은 1955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시의 유명 만화가 오명천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했다. 1986년 다소 늦은 나이인 서른 두 살에 만화잡지 ‘만화광장’에 단편을 실으며 데뷔했다. 토속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체로 사회성 있는 작품을 주로 창작해 왔다.
대표작은 ‘부자의 그림일기’를 비롯해 ‘탈바가지’, ‘남생이’, ‘월북 작가 순례기’, ‘만화 토지(1~7권)’ 등이다. 특히 2007년 출간한 ‘만화 토지’ 1부(1~7권)는 원작자 박경리 선생에게 극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만화의 사회적 역할에도 주목했다. 바른만화연구회를 시작으로 우리만화협의회, 우리만화연대에 몸담으며 만화가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만화작가양성에도 힘써 많은 후배들을 길러냈다.
1993년 한겨레신문이 선정한 ‘우리시대의 만화가 10인’에 선정됐으며, 1999년 ‘오세영 중단편만화 문학관’으로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고바우 만화상을 받았다. 빈소는 용인 ‘평온의 숲’. 7일(토) 오전 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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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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