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있는 카페 ‘민들레의 영토’에서 文友(문우)들을 만났다. 대학로는 서울의 혜화동 로터리에서 종로 5가 방향으로 가는 4차선 도로의 주변 거리를 일컫는 명칭이다. 오랜 세월 그곳에서 우리 나라 교육과 전통을 자랑하던 서울 대학이 1970년대 후반 구로구 신림동으로 이전했다. 그 자리에 야외 공연장과 풍류 마당 등 주로 젊은이들의 공연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생겨난 문화의 거리이다.
한쪽에는 한국 문예 진흥원 건물이 그 권위를 자랑하고 서울 대학 병원 후문도 끼고 있는 대학로에는 수많은 찻집과 갤러리, 그리고 운치 있는 작은 음식점과 책방 등 특색 있는 상점들이 즐비하여서 나이에 상관없이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약 1.8Km가 되는 학문과 예술의 거리이다.
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도 자주 다니던 민들레의 영토는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거리에서 만났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만큼 변한 옛 문우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w. Irving의 단편소설 “Ripbankwinkle” 이야기가 생각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립뱅윙클’은 맘씨는 좋으나 실속을 차리지 못하는 성품이어서 언제나 마누라의 잔소리를 들으며 사는 위인이다. 그날도 마누라의 잔소리를 피하여 산으로 올라갔다가 산 속에 버려진 술병에 든 이상한 액체를 마시고 깊은 잠에 빠진다. 얼마나 잤을까? 한참 후에 잠이 깨어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세월은 흘러 어느덧 20년이 지났다지 않는가?
그가 산에서 잠을 자는 동안 나라 안의 정치, 문화, 경제 심지어는 화폐의 단위까지 변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물론 잔소리꾼 마누라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음에 당황한 립뱅윙클이 변한 세상에 다시 익숙해지는 과정이 해학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로서 마침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끝내고 새 역사를 창조하는 미국 사회를 비유한 일종의 판타지 소설인 셈이다.
내가 방문한 고국의 문단은 마치 어빙의 소설처럼 변해 있었다. 우리들에게 문학에로의 원대한 꿈을 일깨워주시던 은사님들 중에 몇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으며 어느 선생님께서는 병환 중이라는 소식은 안타까웠다. 어린 아들과 함께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박사 학위를 따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후배 유지화, 논설학원 원장이 된 벗 이혜숙, 칼럼니스트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령씨, 원로 수필가로 문단을 지키고 계신 백 선배님, 전공 분야를 바꾸어 고전 무용의 기수가 되신 유선진 선생님, 유명 출판사를 운영하는 선우 사장님, 그리고 문화계의 조용한 로비스트 김철 PH.D.께서 참석하여 자리를 더욱 빛내 주었다. 우리들은 ‘민유선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출간을 거듭 축하하며 글쓰기의 소중함을 논하였다.
종이 신문 보다는 전자신문이 더 많이 읽히고 책으로 인쇄 된 것보다 컴퓨터에 입력된 전보를 쉽게 접하게 되는 세상, 더구나 이제는 스마트폰과 같이 그 기능이 더욱 향상된 器機(기기)를 사용하는 세상이 되었으나 인류의 역사에서 종이 신문의 필요성과 책으로 엮어진 철학 역사 문학 작품들의 가치는 결코 소홀히 취급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론에 모두 공감하였다. 그리고 만일 스마튼 기기의 세상에서 Power(電氣)가 없어지는 순간에 야기되는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며 전율하였다.
그러나 우리 옛 친구들은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자.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비참한 처지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돌아 나오는 길 몫에 보이는 것은 ‘Dear My Friends’라는 드라마 광고판,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우리들의 우정은 끝이 없어라”를 되뇌게 하는 내 노년의 저녁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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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선/전 한미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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