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는 79년도에 초연되었던 이강백 씨의 연극이다.
거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난 변하는데..” 중얼거리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연애 시절 뉴욕에 있던 남편이 뉴욕 날씨는 변덕스러운 여자 마음 같다고 편지글을 보내와 계절 속에서 오락가락하던 나를 빗댄 듯하여 뜨끔 했던 기억도 있다.
유난히 계절을 타는 내 마음을 난들 어쩌란 말인가.
이른 새벽부터 창가 나무에서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부지런한 새소리가 아침잠을 설치게 한다. 밀쳐낸 이불을 슬그머니 끌어당기며 놓친 잠을 다시 불러 보지만 벌레 한 마리를 더 잡아먹었는지 기세등등해진 새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 여름아 가려면 혼자 가지 왜 내 잠마저 가져가는 거냐. 여름은 늘 떠나갈 시간을 이렇게 알려 온다. 가을이 방문 할 거라고.
동네 집집마다 수선화가 피기 시작하는 정원에 철철이 꽃 향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정원의 봄은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꽃들과 만나는 기쁨을 위해 온 정성을 들인다. 겨우내 언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발걸음을 숲으로 향해 본다. 스스로 새 생명을 움트고 있는 숲속에서 피어난 작은 풀꽃을 보았을 때 마음도 덩달아 활짝 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여름 열기에 숨이 막힐 때, 쏟아지는 소나기가 너무 시원해 이참에 내 시름 또한 빗물에 씻어버린다. 날씨 덕에 마음 세척까지 하는데 어떻게 변하지 않겠는가.
늘 봄일 수 없듯이 여름도 내내 머무를 수는 없어 시들고 있다. 도처에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나 사는 일상도 계절과 다를 바 없어 어느 날은 햇볕 따스한 봄이고, 어느 날은 습기 꽉 찬 장마철이다. 하루 안에 사철 변화가 다 일어나기도 한다. 정지된 것은 하나도 없으니 변하는 것은 인지상정. 나는 여전히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아서, 날씨가 나쁘면 날씨가 나빠서 기분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아무리 방정스럽게 마음을 바꾼다 해도 너그러운 자연은 곧 가을을 선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나는 행복한 추녀(秋女)다.
가을은 우선 쪽빛 하늘로 다가오고 나무들은 가을바람 속에서 팔색조처럼 색을 바꿀 것이다. 모두가, 모든 것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가을밤이, 가을 달빛이, 사색이 깊어지고, 무엇을 해도 그저 그 감동이 유난히 넘치는 계절. 이 가을에 난 쪽빛 여자로 변해 보려나?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푸른빛으로 가을 창공과 어울려 지내도 멋질 것 같다.
가을이 떠날 때 즈음에는 난 여전히 날씨 따라, 계절 따라 변할 거다.
그렇게 ‘변하는 나’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
송지선/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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