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잠시 나와 있는 동안, 예정돼 있던 일정 중 하나. 모교, 강릉여고에서 보건 계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과 함께했다. 학생 45명과 선생님 6분. 나의 책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를 읽고 난 후에 진행되는 2시간 반 정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PPT를 만들고, 함께 보여줄 사진들을 찾고, 원고를 말 하는 것처럼 풀어 써보며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나는 강릉여고 30회 졸업생이고, 후배들은 80 몇 회쯤 되는 친구들. 할머니 뻘의 내 경험이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다. 더구나 한국의 진학준비에 거의 문외한이면서. 더하여 책의 내용인 중환자실 이야기들을 읽고, 죽음과 늘 맞닿아 있고, 슬픈 사연이 가득한 곳에서 일해야 되는 상황을 알고, 미리 겁을 내는 어린 후배들이 있을까 봐, 걱정도 되었다.
도착한 교정.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봄이 지나고 있다. 여름을 향하는 교정은 푸르고 교문 입구부터 나의 방문을 격하게 반기고 있었다. ‘모교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랭카드, 내가 뭐라고, 싶었지만 내심 고마웠다.
소강당 입구에 준비되어 있던 2개의 대형 스케치북. ‘기억에 남는 장면들’ 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읽은 후의 감상들을 엽서로 만들어 붙여 놓았다. 장기 이식, 함께 떠난 60년 부부, 한국 할머니, 흰죽 등. 책을 참 꼼꼼히 읽었구나 싶었다. 강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울컥하며 고마웠다.
감사함과 업 된 기분으로 나의 경험을 잘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1학년 학생들의 사회로 시작된 강의. 모두, 완독을 하고 왔단다. 어쩌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몫이겠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런 간접 경험을 통해 그들의 앞날을 결정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면…
나의 강의가 학생들을 위해 준비했던 “인문융합 특강”이라는 거창한 명제에 부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가감 없는 나의 경험과 미국에서 간호사의 역할과 근로 조건 등을 비교적 상세히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
이야기는 술술 잘 이어졌고 강의 끝에 이어졌던 질문시간. 죽음에 대한 물음도 있었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한 꼭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과정은 처음엔 성장이라는 길을 통해서, 후엔 노을이 지는 익어가는 모습으로 변한다. 치열한 성장통이 있어야, 아름답게 지는 노을도 바라볼 수 있고, 그 노을 안에 서 익어가는 지금의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 두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 가고 있다, 정도의 답을 했다. 다른 질문에 대한 답들도 계속 이어졌고, 시간이 너무 많이 간 것 같아 그쯤에서 강의를 마쳤다.
인생의 선배로, 모교의 선배로, 파릇하게 피어나는 그들을 응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교정에 가득한 푸르름처럼 그들의 인생도 푸르고, 여름의 풍성한 초록으로 가득하길 바라며 교정을 나선다. 룸 미러를 통해 보이는 교정에서 내 푸르렀던 시절도 멀리 보인다. 또 하나의 감사, 그곳에 부려 놓는다. 돌아오는 길, ‘화부산(花浮山)봄꽃 피니 아름다워라~~~’ 교가가 생각나며 잊고 있었던 음을 기억해 낸다. 흥얼거린다. ‘빛내라 간직하라 높은 네 뜻을’
<
전지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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