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곱게 물드는 설악산 자락의 500년 된 돌담마을이 요즘 주목을 받고 있다. 설악산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원 속초시 쌍천변 일대 150가구 남짓의 상도문마을이다. 마을 고유의 고즈넉한 정취로 일찌감치 설악 관광 명소로 떠올랐지만 강원 일대 관광사업이 발달하면서 잊혔다. 하지만 최근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느긋한 여유를 찾으려는 젊은 여행객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마을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 설악산 자락 돌담마을상도문마을은 500여 년 전 안동 장씨를 시작으로 밀양 박씨, 강릉 박씨, 강릉 김씨, 해주 오씨가 정착하며 형성된 집성촌이다. 지금도 이들의 후손들이 터를 지키고 있다. 마을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설악산으로 가는 길에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사들이 이곳에 들어서자 주위 숲에서 불법을 외는 듯한 맑은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소리에 이끌려 법장을 멈추고 서 있다가 큰 깨달음을 얻는 도통의 문이 열렸다. ‘도’의 ‘문’이 열린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에 도문(道門)을 붙였다. 물의 흐름을 따라 하도문마을과 중도문마을이 있다.
마을의 골목골목을 휘감고 있는 기다란 돌담이 상도문마을의 상징이다. 사람 얼굴만 한 바윗덩이가 투박하게 쌓였다. 성인 어깨높이까지 쌓인 돌담길이 길게 이어진다. 돌담 위에는 나팔꽃, 호박꽃 등이 하늘하늘 피어 있다. 작은 기와지붕을 얹은 돌담도 있다. 돌담 사이 낀 이끼와 넝쿨 흔적에서 돌담이 견뎌온 세월을 가늠할 수 있다. 주민들이 돌멩이에 고양이와 참새, 부엉이 등을 그린 공예품들이 돌담 위에서 여행객을 맞는다.
상도문마을 일대는 예부터 온통 돌밭이었다. 마을을 지나는 쌍천이 갈고 닦은 크고 매끈한 돌이 많았다. 박성균 상도문1리 통장은 “여기는 땅을 파기만 하면 온통 돌이라 먼 옛날부터 선조들이 돌담을 쌓았다”고 했다. 마을은 설악산을 병풍처럼 두른 천혜의 지형으로 6·25 전쟁의 포화를 피했다. 덕분에 오랜 세월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돌담만큼이나 마을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것은 기와다. 전통 한옥 양식의 기와집부터, 현대식 주택에 올린 기와지붕까지 곳곳에서 기와를 마주할 수 있다. 상도문마을에는 예부터 초가보다 기와집이 흔했다. 이곳에 잿가마가 있었던 덕이다. ‘재’는 지역 방언으로 ‘기와’를 뜻한다. 즉, 기와를 굽는 가마가 있던 마을이었다. 현재는 사라졌지만 마을의 터줏대감들이 어릴 적만 해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옥이 많은 상도문마을은 1975년 설악 관광의 명소로 인기를 끌면서 민박촌으로 지정됐다. 마을 주민들은 “설악산 민박이라는 게 우리 마을에 제일 먼저 생겼을 것”이라며 “1970~1980년대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버스가 관광객을 가득 싣고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좁던 길을 넓히고 돌담도 옮겨 쌓는 등 마을이 북적였다. 하지만 민박 여행이 쇠퇴하고 주민들의 고령화 등으로 관광객 발길도 끊어졌다.
마을이 감성 돌담길로 다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은 수년 전이다. 2019년 정부가 상도문마을을 ‘민박촌’ 대신 ‘돌담마을’로 리브랜딩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옥 카페, 무인 사진관, 갤러리 겸 방문자센터 등이 들어서면서 감성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여행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마을 지키는 송림, 절경의 제방길
상도문 돌담마을 남서편에는 송림(松林)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예로부터 송계를 조직해 소나무숲을 관리해 왔다. 정성껏 가꾼 소나무숲은 현대식 제방이 건설되기 전 마을을 범람하는 쌍천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방어선이자 놀이터이자 쉼터였다.
숲을 이루는 소나무는 금강송 중 으뜸으로 꼽는 한솔 육송으로 70~80여 년 전 식재한 것이다. 박 통장은 “어렸을 때 온마을 아이들이 숲으로 나와 같이 뛰놀던 기억이 난다”며 “그때만 해도 나무가 죄다 작고 어렸는데 어느덧 울창한 소나무숲이 됐다”고 말했다.
마을의 끝에서 쌍천의 마른 지류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 숲에 첫걸음을 딛자마자 청량한 소나무 향이 덮친다. 한 걸음씩 고요한 숲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돌담마을로 리브랜딩을 거치며 숲 곳곳에 미술품을 숨겨뒀다. 나무로 깎은 곰과 다람쥐 공예품이 방문객을 반긴다.
숲의 동편은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매곡 오윤환(1872~1946)이 1934년 지은 정자 학무정(鶴舞亭)과 이어진다. 상도문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서 학업과 교육에 몰두했다. 1919년 제자들과 3·1운동에 나서 옥고를 치렀고, 삭발과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일제에 저항했다.
오윤환이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학무정은 주변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신선과 학이 깃든 풍경에서 온 이름이다. 마을 돌담에는 그가 마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구곡가’ 소절이 곳곳에 걸려 있다. 숲의 서편으로 난 길은 송림쉼터로 이어진다. 소나무숲에 트리하우스와 오두막 등이 설치돼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소나무와 수풀 사이 숨겨진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면 제방길로 이어진다. 마을의 한 어르신이 “반드시 보고 가야 한다”며 입이 마르도록 추천한 산책길이다. 왼편으로는 송림과 돌담마을이, 오른편으로는 쌍천이 내려다보이고 쌍천 너머로 웅장한 설악산이 솟아 있다.
상수원으로 보호받고 있는 쌍천은 강바닥이 훤하게 보일 만큼 맑고 투명하다. 물가에 놓인 셀 수 없이 많은 흰 돌더미를 보고 있자면 외지인조차 돌담을 쌓고 싶어진다. 마을의 수많은 돌담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산책길 끝에는 둥근 돌탑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상도문마을의 형태가 배처럼 생겼기 때문에 돛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돌로 만든 돛, 행주석범(行舟石帆)을 만들었다. 400여 년 전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54년 수해로 유실됐다. 현재 볼 수 있는 돌 돛은 마을 주민들이 재해 방지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2013년 다시 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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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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