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무비자 입국 여권 순위에서 1위는 싱가포르고 대한민국과 일본은 2위였다. 예전엔 세계 최강 1위였던 미국은 10위 밖으로 밀려났고, 이래 저래 바람 잘 날 없는 중국 러시아도 저 아래다.
무비자 순위는 일반 여행자들의 신뢰도와 경제적 접근성으로 정해진다. 그러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비자로 보복을 하는것 같다. 몇년전 브라질과 러시아 여행은 미국 여권은 비싼 돈을 내고 비자를 받으며 한국 여권을 부러워했다. 좌우지간 어딜가든 예쁘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고 미운털 박히면 꿀밤이 우선이다.
어느덧 또 십년이 지나서 여권을 갱신하게 되었다. 시민권을 받고 처음 미국 여권을 받았을때는 묘한 성취감과 미국 시민이 되면 공무원도 될 수 있다니 뭐든지 할 수 있을것 같아서 기대가 컸고 기뻤다.
보통은 4주에서 8주가 걸리고 가족관계에 변동이 생겨, 이름을 바꾸거나, 이혼, 재혼, 성전환을 하면 새여권 만드는 것만큼 시간이 걸린다는데, 나이든 것 빼곤 변한게 없고, 털어봐야 약만 나오는 우리는 새 여권을 2주 뒤에 받았다. 한결같이 언제나 여권 사진은 못 생기고 이상하다니까, 똑같다고 비웃는 남편에게 아프리카 난민 같다며 흉보며, 난 역시 실물이 훨신 낫다고 우긴다. 가뜩이나 무릎수술한 뒤엔 공항검색대에서 쇠붙이가 없는데도 삐소리가 나서 다시 통과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컹 하는데 못 생긴 여권사진으로 10년을 가야한다.
그러다 예전에 어른들이 누구를 만나거나 어디를 다시 가자고 하면 다음을 약속할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과연 우리도 앞으로 십년 뒤에 다시 여권을 만들고 지금처럼 여러 나라 출입국 도장을 받을수있을까?
인생은 나이와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고하니 우리는 70키로로 달려갈 것이다. 봄 바람 불어와도 철 모르더니, 뜨거운 여름 같은 청춘을 지나, 수확의 가을을 지나고 나니, 내게도 텅빈 겨울이 다가온다.
그동안 몇 번 한국에 다녀왔었다. 처음엔 시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셨고, 빛 바랜 자개장이 있는 엄마방에서 지냈지만 그래도 부모집이어서 마음은 편했다. 이제는 공원 묘지에 인사하고, 대가족이 대충 모여서 온갖 해산물로 밖에서 식사모임을 하는데, 누나와 형님들은 활발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회생활로 바쁘지만, 모두가 80에서 90대가 되어 다음 만남은 정말 알수가 없다. 남편 친구들과의 만남은 좋지만 1주일에 10번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고 먹느라 우리는 배탈이 나서 아침마다 해장국을 들이킨다.
서울에서도 쓸쓸하게 남한강 가족묘지에 계시는 엄마를 만나고 외가 친척들을 만나고 또 만나면서 산채정식, 해물정식, 두부정식과 갈비를 먹었는데 이제부터는 여기저기 산소로 인사를 다녀야한다.
할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고집 세던 고모도, 이북 출신으로 건강하셨던 고모부와 함께 계시는데, 그곳에서도 왕만두 전골과 녹두전을 드시며 입가심으로 동치미 냉면을 먹을것 같다.
그리도 똑똑하고 부자였던 수학의 여왕인 이모도 요양병원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시들어가니 자식들도 지쳐가고 서로가 못 믿어워하며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한다.
사랑밖에 난 몰라 라고 부르는 사촌 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조신하게 자라 국회의원 아들과 약혼까지는 했는데,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던 형부와 사랑에 빠져 어느날 줄행랑를 쳤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지만 일년 뒤에 손주와 함께 나타나 모든게 덮어졌다.
젊어서도 머리숱이 듬성하고 키도 작은 형부는 공부를 엄청 잘해서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어 나중에는 온 집안의 사랑을 받았고 우리 부부를 참으로 예뻐해주며 일리노이에서의 유학생활을 함께 추억했는데 아끼던 사촌언니를 남기고 가셨다.
내 친구들과 남편의 친구들은 워낙 친해서 함께 지내고 여기저기 함께 돌아 다닌다. 그럭저럭 바쁘게 2주가 지나면 슬슬 지루해지고 조금은 아쉽지만 집에 가고 싶어진다. 아직까지는 친척이나 친구네서 있었지만, 웬지 불편해져서 짐만 놔둬도 적당한 호텔이 편하다는 이민 선배들 말을 따라야겠다.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를 했고, 그렇게 화끈하게 지지고 볶으며 싸우던 남편과도 심드렁하게 그냥 저냥 등 긁으며 강아지랑 지낸다. 그나마 퇴직금을 날려 쪽박을 차거나 아직은 홀로 된 친구가 없으니 다행이다. 그동안 남편과 애들 빼곤 할 말이 없던 우리들도 이제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니 친구 사이는 돈독해진다.
한국에 간다하니 온갖 참견과 주의사항도 많다. 에어컨 나오는데서 땀 흘리지 말고, 커피 리필해달라지 말고, 출입문 붙드느라 계속 서있지 말고, 택시나 엘리베이터에서 히죽 웃으며 인사하면 돌았거나 미국 촌놈이라 깐본단다. 그나마 난 서울 깍쟁이니 부산 촌놈보다는 또릿하려고, 유튜브와 AI를 부르며 가방을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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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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