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차츰 몰려오며 술렁거리는 도시는 긴장감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주일 아침 예배가 끝날 무렵부터 세미한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해질녘부터 겹겹이 쌓여가던 하얀 눈발은 어느새 거대한 눈폭풍이 되어 뉴욕 전체를 집어삼켰다.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의 비상 경보음과 창밖을 휘감는 칼바람 소리는 도시의 모든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사순절 새벽예배를 위해 서둘러 나서던 교회의 문도 굳게 닫히고 세상은 하얀 눈 속에 완전히 포위되어 감금 되었다.
분주한 세상사에서 고립되어 본의 아닌 휴식의 한 귀퉁이에 문득 염려가 들어선다. 매일 아침 산책로에서 마주치던 다람쥐들과 들고양이, 그리고 자연 속의 작은 생명들은 이 매서운 눈보라를 피해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또한 맨하탄 차가운 콘크리트 위를 서성거리던 거리의 이웃들은 이 폭풍 속에서 무사히 지내고 있을지. 시편의 기자가 고백했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바로 집 밖의 저 풍경이 아닐까 싶어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온다.
무거운 마음으로 실내를 살피다 나의 시선이 멈춘 곳은 거실의 작은 창가다. 창밖에는 생명을위협하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지만,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실내에는 사시사철 붉은 빛을 잃지 않는 제라늄과 우아한 자태의 서양란이 고요히 피어 있다.
그 연약한 꽃잎들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폭풍이 멈추어야 평안한 것이 아니라, 폭풍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손길이 있기에 평안할 수 있음을 말이다. 환난의 바람이 창을두드려도 꺾이지 않고 피어 있는 저 꽃들의 모습은, 마치 거친 세상 풍파 속에서도 당신의 품 안에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닮았다.
사순절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 그리고 광야의 금식을 감내하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절기이다. 어쩌면 오늘 우리를 멈춰 세운 이 눈폭풍은, 분주했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내면의 성소(聖所)에서 주님과 독대하라는 하늘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비록 몸은 집 안에 갇혀 있지만 내 마음의 제단에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감사가 피어오른다.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이 폭풍 속에서 떨고 있을 작은 생명들과 소외된 이웃들에게도 주님의 따스한 손길이 덮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창가에 만개한 고운 꽃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어떤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평안이 깃들기를 기도한다. 폭풍이 지나간 뒤 더욱 맑게 갤 내일의 하늘을 기다리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고요한 멈춤의 시간을 깊이 사랑하며 감사를 드린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태복음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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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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