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도 ‘내가 무얼 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한적도, 꿈을 가져본 적도 없다.
부모님께서도 장래 꿈이 무어냐고 다그치신 적도 물론 없었다.
지난달로 만 86세, 짧지않은 생을 살아오면서 회고해보면 막연히 될대로 되라 하고 산 건 결코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착실히 삶을 영위해온 건 틀림없다.
특이했던건 중2, 열 네살때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나 혼자 영어회화반 강좌를 듣기 시작했고 열다섯 되던 다음해에 영문타자학원에 갔는데 원장 말씀이, “지금 이걸 배워서 무얼하겠다는 거냐? 저기 누나들 고졸반 학생들인데 졸업후 취직준비하고 있는거다.” “원장님, 그냥 배워두고 싶어 그러는 겁니다”하고 등록을 하고 단 한달만에 분당 45단어를 치는 실력을 과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자랑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고, 20세 되던해 미에스캄사령부 도서관에 사서를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을 했는데 수십명의 대졸자들을 제치고 내가 당당히 발탁, 주위를 놀라게 했다. 영어회화는 필수이고 영문타자도 오타없이 완벽히 치는 조건인데 대학 문턱도 못간 내가 취업이 된거다.
1961년부터 1965년 군에 입대하기까지 만 4년간의 미 도서관 사서경력은 그후 육군정보학교 교수부 영어계 조교로 선발되어 1966년 11월 6일 월남참전차 부산항에서 미군병력수송선에 몸을 싣고 떠날 때까지 근무를 했고 월남에서도 십자성부대 사령부 비서실 근무, 야전사 방첩대 정보연락장교 임무 수행을 하는 경력을 쌓게 된다.
귀국 제대후,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인 일원으로 큰 폐단 없이 성실히 살아온 게 자랑스런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삶,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나름대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봉사활동도 해온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근간, 주위에 보면 뉴욕에서는 임형빈 선생님의 백세 생신축하 사진과 기사가 한국일보 지면을 장식했고, 고국 서울에서는 103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한두시간씩 강연을 하고 계신 김형석 선생님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나에게 꿈이 있다면, 언감생심 임형빈, 김형석 어르신들 처럼은 아니더라도, 끊임없는 독서와 사유를 즐기며 글을 쓸 수 있는 의지와 기력을 유지하고 싶다는 거다.
이 나이가 되도록 신문 구독을 계속하고 있고 19층 문턱까지 한국일보를 배달 받으며 졸필이나마 글을 기고할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들도 3권을 받아 탐독했고 최근 가장 좋아하는 김규나 작가의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1, 2권을 비롯해 몇권을 한국에서 가져와 정독할 정도의 독서를 즐기고 있다.
‘배움은 늙지 않는 영혼의 숨결’이라고 갈파한 어느 작가의 말이 최근 가슴에 깊이 꽂힌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세상을 가르치기 위함도 아니고 거창하게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며 다만 나 자신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사유하며 살아온 흔적이 가볍게 흩어지고 소멸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살아있는 동안, 소박한 나의 이 꿈이 계속 이뤄지는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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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원/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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