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아들의 가방을 슬쩍 뒤져보았다. 이런 습관이 들게 된 것은 리키 때문이다. 리키는 올해로 열여섯 살이다. 건너편에 사는 멕시코계로 그의 엄마 애나와는 이민 초기부터 알고 지냈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해 점차 불러오는 배를 마주보면서 인종의 벽을 넘어 초보엄마가 되어 가는 설렘과 두려움을 나누는 동지로 친해졌다.
큰아들보다 2주 먼저 태어난 리키는 평범한 개구쟁이로 자라났다. 맑은 갈색 눈동자가 유난히 긴 속눈썹 안에서 반짝이던 그가, 턱밑에 검은 솜털이 삐죽거리는 사춘기를 맞이하며 조금씩 변해갔다. 행동이 거칠어지고, 학교에는 거의 안 가는 듯했다. 항상 눈동자가 충혈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겨보듯 초점을 잃은 채이거나, 날카로운 눈초리를 매달고 물건을 훔쳐가기까지 했다. 어릴 적 모깃불 놓는다고 마당구석에 피웠던 마른 풀 타는 매캐한 냄새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풀썩이며 풍겨왔다.
한번은 물건을 구입한 후 돈을 내려고 주머니를 뒤적이면서 손안 가득 내용물을 카운터에 쏟아내었다. 담배, 라이터, 유리대롱, 담배 말아 피우는 직잭이라는 종이, 마른풀과 알약 그리고 말간 설탕 덩어리가 뭉쳐진 것들이 작은 비닐봉투에 각각 담겨져 어지럽게 흩어졌다. 이런 나쁜 것들을 왜 가지고 다니느냐는 나의 질책에 네 일이 아니니 상관 말라며 일축해 버렸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해 한번 빠져들면 헤쳐 나오기 힘든 악마의 늪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인간을 파멸의 길로 몰아붙이고, 다른 범죄들이 그 안에서 파생되기에 근절돼야 하는 악의 뿌리이다. 점차 대중화되고 그 세력이 나이와 인종을 넘어서 확산시켜 나간다고 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손쉽게 구입할 수 있어 청소년기에 다섯 명에 한 명 정도가 기초단계인 대마초를 피워 보았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한번쯤 호기심 삼아, 같은 또래의 부추김 혹은 압력 등으로 손을 대보았다는 것이다.
리키가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문득 동갑내기인 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자식은!"이라는 믿음의 콩깍지에 눈이 가려 나쁜 것들과는 연관시키지 않으려는 것이 부모의 심리이다. 매스컴에 연일 오르내리는 청소년들의 마약에 관련된 기사를 보며 ‘일부의 그렇고 그런 아이들’
의 일로 치부해 무관심하기 일쑤였다.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과 같이 부모들도 마약에 대해 지식이 전무한 상태이다. 그 종류와 모양, 사용 방법과 중독시 나타나는 증후 등에 대해.... 마약의 심각성을 깨달아 관심을 갖고 알아두는 것이 부모로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강연회나 모임 그리고 관련된 기사들을 주의 깊게 찾아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둘이 같이 어울린 적은 없지만 리키가 몽롱한 상태로 다녀간 날에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런 날은 돌아와 아들의 가방을 뒤져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믿어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몰래 한다는 죄책감에 망설였었다.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최소한의 예방책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낯선 물건들이 발견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열어 뒤적이는 짧은 순간의 가슴 졸임. 의심할 만한 것들이 없었음에 "휴"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들이 고맙기까지 해 눈물이 코끝에 맴돌기도 했다. 나중에 아들이 알게 되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될까봐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곁눈질로 자식 주위에 다른 변화가 없나 훔쳐 봐야하는 엄마의 마음은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들이 얽히며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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