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청와대로 진군한 뒤 공직사회의 관심은 공무원들의 골프장 출입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느냐에 쏠렸다. 전임 YS가 공직자들의 ‘골프 금지령’을 내린 전례가 있는 데다 골프채라곤 쥐어본 적도 없다는 DJ가 들어섰으니 더 엄한 금지령이 발동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DJ는 너그럽게도(?) 공무원의 골프 금지령을 해금했다. 공무원도 스포츠를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로부터 공직자들의 골프행렬이 그린을 메웠다. 한국에서 골프를 치려면 비싼 요금을 내야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 주말의 경우, 한사람 당 못해도 22만~27만원, 미화로 환산하면 170~200달러라는 큰돈이 들어간다.
서민들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귀족 스포츠’인 셈이다. 아무리 비싼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돈 내고 친다면 문제될게 있겠는가. 하지만 요즘 한국 골프장엔 연봉 1,500만원이 될까말까한 하위직 공무원들까지 골프채를 둘러메고 나타난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들 대부분이 이른바 ‘접대 골프’를 즐기고 그 날의 ‘봉’은 예외 없이 민간 업자들이란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DJ의 골프 해금령이 발해진 뒤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와 비리는 바야흐로 극에 달하고 있다. 하늘에 별따기라는 골프장 부킹을 하려면 끗발 센 부처, 이를테면 국세청, 검찰, 경찰 등이 동원되고, 일요일이면 전국 골프장이 공무원들로 북적대고 있다. 개중에는 토요일 오전 근무시간에 슬쩍 자리를 비우는 자도 있고 현충일 같은 국경일에 줄줄이 골프장으로 몰려드는가 하면 왕가뭄으로 전국의 산하가 타 들어가는 판에도 골프를 유유히 친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의 지각없는 행각이 도마 위에 올려졌다. 특히 여론의 따가운 눈총도 마다 않고 공동정권의 단합을 다진다는 명분아래 수하들을 이끌고 골프를 치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천만원대의 내기골프를 했다해서 구설에 오른 JP와 그 일행들의 ‘배짱 골프’는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정치 권력자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이런 행각은 급기야 국가 안전을 책임 맡은 국방 고위관리들의 심각한 ‘군기 해이’로 이어졌다. 북한 상선이 우리 영해를 침범한 지난 2일 국방부 장관과 차관, 합참의장, 해군 참모총장, 공군 참모총장 등 관련 최고위 군지휘관들은 그린필드에서 백구를 날리고 있었다. 이들은 사건 발생을 보고 받고서도 18홀 마지막 굿샷을 포기하지 않은 채 운동 후 성찬마저 즐긴 것으로 보도됐다.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에도 이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이런 한심한 일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DJ는 기회 있을 때마다 "튼튼한 안보 위의 대북 화해정책"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런 ‘레토릭’(수사적 발언)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번에도 "비무장 상선을 무력으로 밀어내면 전쟁이 날 우려가 있었다"며 북한 상선을 방치한 것이 잘된 일인 양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리 남북 화해가 중요하다고 한들 영토와 영해를 지키는 것은 "주권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책무"에 해당된다. 정전협정에 의해 우리 군이 북한 상선을 힘으로 밀어 냈다해서 전쟁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는 국민은 없다.
군 고위관계자들의 골프 행각도 따지고 보면 ‘화해 최우선’이라는 고위층의 멘탈리티와 무관치 않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화해는 화해, 주권 수호는 수호"라고 단호히 대응했던들 국방 책임을 진 저들이 태평스럽게 그 시각 백구를 날리고 있었을까.
이런 사태들이 연속적으로 터지자 지금 국민들은 ‘골프 망국론’이니, ‘안보 붕괴’니 하는 비난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애꿎게도 건전한 스포츠인 골프가 한국에서 욕먹고 있는데 대해 골프 애호가들은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식 잘못된 골프문화만은 차제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적으로 옳다. 사실 그 보다 더 중차대한 일은 무너진 안보태세를 재건하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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