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에서 평생 잊지 못할 콘서트를 보았다: ‘영웅들에게 바치는 헌정 콘서트’. 인기 연예인들이 대거 참여해 9.11 테러참사 희생자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노래와 조사로 치하하고 그들의 명복을 비는 모습은 어찌나 절절하던지, 보는 이들의 가슴 깊이 파고들어 눈물을 퍼 올리고, 다시 한번 그들의 명복을 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많은 희생자들이 보여준 사랑과 용기를 전해 들으며, 그들은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기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까지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크고 작은 곤란함에서 나를 구해 주었던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나의 천사들이 떠올랐다. 그 중의 하나가 ‘눈의 천사’이다.

나의 ‘눈의 천사’는 10여년 전 어느 겨울, 폭설이 내리던 날 내게 와주었다. 시카고 겨울 날씨에 눈이야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 날은 마침 남편이 출장 중이어서 무릎까지 쌓여 있는 눈을 치워야할 일이 막막했다. 10세, 7세짜리 두 아이의 도움(?)을 받으며 1시간 이상을 땀을 뻘뻘 흘리며 허리가 휘도록 삽질을 했는데도, 드라이브 웨이가 반의, 반의, 반도 드러나질 않았다.

’저 남은 눈을 어떻게 마저 치우나’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몇 집 건너에서 제설 작업하는 차가 보였다. ‘아, 살았다!’ 하고 눈 속을 기어가다시피 가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제설 작업원에게 ‘그 집 끝나는 대로 우리 집도 치워달라’고 부탁하니, 예약된 고객의 스케줄이 벌써 꽉 차 있어 자기 마음대로 추가를 할 수 없다며 사무실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직원은 아주 딱 잘라 오늘은 일이 밀려 더 이상 예약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날 따라 회사에서 고객과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라 늦어도 10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되었기에 다시 삽을 잡고 무거운 눈과 끙끙대며 씨름을 하고 있는데, 아까 봤던 그 제설 작업차가 와서 멈추더니 전화로 예약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더 이상 안 받더라고 했더니, 그는 "그럼 차 한대 뺄 수 있을 만큼만 빨리 밀어주고 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내친 김에 해버리자고 생각했는지 드라이브 웨이 전체를 말끔히 다 밀어 주었다. 나는 얼른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20달러짜리 한 장을 들고 나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건네주었다. 그러나 나의 ‘눈의 천사’는 끝내 사양하며, 다음 스케줄에 늦었다며 황급히 떠나버렸다.

이웃을 돕다가 목숨까지 잃은 희생자들의 영웅적인 행동에 비하면 지극히 작게 보이는 선행이지만, 그들은 평소에도 늘 그렇게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을 것 같다. 그들은 또한 많이 웃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 에머슨이 말한 ‘진정한 성공’의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평소에도 이렇게 잘 살은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