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청소업으로 돈을 좀 번 친지가 이민 초기의 에피소드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LA공항에 내린후 텍사스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갈증이 심하더군요. 식수대에 가서 물을 마시려는데 물이 안나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그 앞에만 서면 저절로 물이 나와서 물을 마시는데, 내가 그 앞에 서면 물이 안나오는 겁니다”
발로 바닥의 단추를 누르면 물이 나오게 된 식수대였는데, 그때까지 한국에는 그런 장치가 없었으니 그로서는 알길이 없었다. “왜 남들이 가면 물이 나오는데 내가 가면 물이 안나올까”만 궁금하고 당황스러웠다.
“말이 통하나, 돈이 있나, 미국이라고 오긴 왔는데 여기서 정말 살수 있을까, 참 막막했지요”
지난 몇년사이 정반대로 한국에서 그런 ‘막막함’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국은 지난 90년대 중반 이민법을 강화하면서 영주권자가 중범행위로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추방할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 여파로 거의 300명의 미주한인들이 한국으로 추방당했는데, 이민국 수사관들의 호송을 받으며 한국땅에 발을 딛는 순간 그들을 맞는 것이 바로 그 ‘막막함’이라고 한다.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이민국 교도소로 옮겨가 있다가 어느날 ‘오늘 한국으로 가라’고 하면 입은 옷 그대로 수갑차고 한국으로 호송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인천공항에 내리면 모두들 정신적 충격이 대단합니다” - 미주한인 추방자들의 한국 적응을 돕는 서울의 디딤돌 선교회 전은찬 전도사의 말이다.
“미국 교도소에 있을 때는 자유는 없어도 ‘미국’이라는 것 때문에 안심이 되었는데, 막상 한국에 내리면 충격으로 앞이 캄캄하다고 합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가족들은 다시 볼수가 있는 걸까… 막막함이 엄습해와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디딤돌 선교회는 지난해부터 40명 정도의 추방자들에게 임시 숙소를 제공해왔는데, 대개 어려서 미국에 와서 청년기를 방황하다 수년간 교도소 생활하고, 중년에 추방돼 한국에 돌아온 케이스들이다. 한국말부터, 버스·지하철 타는 것, 화폐사용등 모든 게 낯선 이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 것이 이 선교회의 일이다.
“하지만 대개 부모 형제도 외면한 이들을 돕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은찬 전도사가 걱정한 최악의 경우가 지난 5일 발생했다. 지난달 한국으로 강제추방된 캘리포니아 출신 김대철씨(45)가 사격장에서 권총자살을 했다. “도저히 적응을 못하겠고,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서”라는 유서를 남겼다. 영주권자 추방문제에 대해 이민 커뮤니티가 목소리를 모아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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