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폰을 통해 들려오는 데이빗의 목소리는 다소 쉰 듯 했다. 가을비 끝이라 감기라도 걸렸나 했더니 한창 세미나중이라고 한다. 매년 한 차례 열리는 데니스 식당의 프랜차이즈 컨벤션 때문에 하와이에 와 있다는 것이다.
한인사회의 많은‘데이빗’중 한 사람인 그는 1.5세로 올해 나이는 서른 둘 정도.
그는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에서 데니스 레스토랑을 20개 이상 운영하고 있다. 햄버거 체인인 칼스 주니어도 몇 개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식당에서 맥주를 만들어 파는 마이크로 브루어리 쪽으로도 진출했다.
지난해 만났을 때 그가 월급 주는 직원이 1,000명이 넘었으니까 지금은 그보다 좀더 늘었을지 모르겠다. 그의 비즈니스 스토리는 한 번쯤 소개됐으면 했으나 "조용히 사업하고 싶다"며 커뮤니티에 알려지는 것은 꺼려한다.
이런 그에게 1년여만에 불쑥 전화를 한 것은 언젠가 그에게 들었던 "돈은 불경기 때 버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나서였다.
10년 전 부동산 경기가 수직낙하 하던 때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한인들은 그 때 부동산에서 손을 털었다. 부동산이 식으면 타운에는 본격 추위가 시작된다. 융자, 에스크로, 타이틀, 감정, 터마이트 뿐 아니라 가구, 건축, 카핏, 페인팅 등 걸리는 곳이 워낙 많다. 타운 체감경기가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은 부동산, 그 중에서 주택경기가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던 데이빗은 남들이 다 부동산을 떠나던 그 때 부동산에 달려들어 돈을 벌었다고 한다. 싸게 쏟아져 나오는 헌 집을 고쳐 팔았는데 재미가 아주 짭짤했다는 것이다. 그 때 이후 처음 문지방을 넘고 있는 불경기, 그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의 셀폰 번호를 누르며 어렴풋이 예상했던 대로 10년만의 불경기가 그에게서는 10년만의 기회가 되어 있었다. “캐시 100만달러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때가 된 것 같아요. 같은 100만달러라도 3년 전보다 효용가치가 10배 이상은 되는 것 같더라구요. 요즘은 돈이 말랐어요. 있어도 큰 기업으로만 가고-. 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죠”
데니스 하나를 세우는데도 150만달러가 들지만 연 매출 억달러 단위에 가맹점만 100개가 넘는 업체도 몇 백만 달러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요즘의 업계 사정이라고 한다. 자세한 말은 아꼈으나 ‘샤핑준비’에 바쁜 눈치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불경기가 끝나면 그는 또 다른 차원의 비즈니스맨이 되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요-"라는 그의 이야기대로 30대 초의 이 한인 젊은이가 돈으로 비즈니스를 일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돈보다는 정보와 (인간)관계가 사업의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보를 얻고, 관계를 맺으려면 우선 그 바닥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굴러야 한다. 타운 안에서 유통돼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정보란 그 양과 질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1세들은 그렇다 치고, 자꾸 타운으로 들어오는 1.5세, 2세들은 그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불경기라며 지레 움츠러들기만 하는 1세 비즈니스맨들도 경영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안전 운영으로 살아남기가 최우선 과제이긴 하지만 숨 돌릴 여유가 있는 비즈니스맨이라면 경영학 원론에 나오는 말 같긴 하나 지금이야말로 기회란 것을 우리들의 데이빗 사장은 그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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