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 그는 거의 죽게되었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거의 죽게 된 그를 보았지만 외면하고 지나갔습니다.
한 레위인도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된 사람을 보았지만 일부러 피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던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자기 자신이 소유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 멘 뒤 주막으로 데리고 가 치유해 줍니다.
널리 알려진 성경 얘깁니다.
이 이야기는 비록 2000년 전의 사실이지만, 오늘날 개인적이고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한 식품점과 음식점 앞의 주차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자동차를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볼일을 보고 온 자동차 주인은 어처구니없는 꼴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자동차 왼쪽 두 문짝 모두가 크게 움푹 패여 뒷 문은 열리지도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황당했을 자동차 주인의 심경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교포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식품점과 음식점이니까 그 두 곳에 들어가 혹시 목격자가 있을까 외쳐봤지만 누구하나 관심 있게 듣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보험 커버를 위해서는 경찰의 ‘리포트’라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경찰서에 연락했답니다.
행여 어느 목격자가 신고 해 준 것이 없을까하는 간절한 심정과 함께 말입니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 였습니다.
하지만 그 경찰은 순찰 나간 당번이 30여분 후에 들어오니까 그때 다시 한번 전화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30여분 후 전화통화.
그 날 순찰을 나선 당번 경찰은 어느 목격자의 신고를 받았다면서 자동차가 주차 해 있는 현장까지 달려나왔습니다.
이런 ‘Good Citizen’이 있기에 참으로 다행이라면서 그 경찰은 목격자의 연락처는 물론 ‘뺑소니’차량의 주인 연락처까지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설명했습니다.
목격자의 신고에 따라 자동차 라이센스를 검색하고 곧바로 자동차 주인의 연락처를 알아냈답니다.
경찰과 통화를 한 뺑소니 차량의 주인은 차를 받고 도망친 사실을 극구 부인했습니다.
경찰은 그렇다면 목격자를 대질시킬 수밖에 없으며 ‘뺑소니’사건은 ‘Jail’에 갈 수 있는 사건이라고 엄포했답니다.
그때서야 모든 것을 자백(?)받을 수 있었다고 경찰은 말했습니다.
경찰은 자기의 임무를 한 것이지만 여기서 고마운 사람은 목격자였습니다.
목격자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사고 당한 차량 주인의 감사를 오히려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저는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주차 돼 있는 자동차를 덜컹 받아 큰 사고를 내고도 그냥 도망하는 사람을(한국사람)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얼른 자동차 플레이트 라이센스 넘버를 적었습니다.
마침 그 당시 한 여자 분도(이분도 한국분) 나와 같이 이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어떻게 신고해야 할지 몰라 그 여자 분한테 물었으나 그 여자 분은 남 일에 웬 간섭이냐는 식으로 말 없이 발걸음을 돌리더군요.
그냥 한국식으로 ‘911’를 돌려 경찰에 신고했을 뿐입니다"
사고를 당한 자동차 주인이 얼마나 억울해 할까를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지 처음 해 보는 것이지만 목격자 신고를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그 목격자.
그는 목격자의 진술이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전화번호 하나를 더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나의 일도 아닌데 남의 일에 끼어들면 귀찮은 것은 물론 괜스리 손해까지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인들 생활 태도 아닙니까?
이웃의 어려움에 뛰어들었다가 경찰서에서 오라가라하면 얼마나 귀찮을까 하는 약삭빠른 계산도 나올 법한 일입니다.
교통사고의 현장을 보아도 이미 지나간 일인데 진실을 밝혀준다고 해서 나에게 돌아온 이익이 없다는 이기적인 생각. 그래서 오히려 못 본 척 해버립니다.
교통사고가 늘어나는데 목격자가 줄어드는 것도 이와 같은 현상 때문이겠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뺑소니 차량에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형제·자녀들이 그 당사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의 주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그 경찰이 말하던 ‘굳 시티즌’의 첫 걸음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래 전 인기를 끌었던 ‘웨스턴 스타일’의 영화이름이 생각납니다.
The good, The bad, The ugly.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누구이며 강도 만나 죽을 뻔했던 사람을 구해 준 유대인한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은 누구일까요?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각자 몫입니다.
임승쾌 본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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