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부터 적을 두고 있는 NY 감리교 병원은 프로스펙트 팍과 브루클린 보태니컬 가든을 지척에 두고 지상 8층, 지하 2층으로 580개 병상을 갖고 있는 교육병원이다. 세계 최초 감리교계 병원이어서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으나 뉴욕의 어느 병원보다 재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알찬 병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의욕적인 병원장 덕분이다.
몇 년 전 그가 부임했을 때 1881년에 지은 낡은 걸물을 철거, 새 병동을 지을 때 병원 전면에 정원 조성하는 것을 보고 입구 양쪽에 두 그루의 단풍나무를 심게 해달라는 나의 제의가 수락된 후 심어진 그 나무들은 나의 회진 길을 밝게 해주고 있다.
내게 수련의 과정을 주었고 20여년 내과의사로 활동하게 해 준 나름의 감사 표시이긴 하지만 병원측은 이 나무는 누구의 기증으로 여기 심어져 있다는 푯말을 붙여놓았다. 그것을 볼 때마다 병원에 대한 소속감도 소속감이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 병원에 아무개가 거쳐갔다는 흔적이라 해도 좋다.
뒤돌아보면 나무와 돌과 산과 강을 가까이 살아온 지난 세월에서 우러난 자연현상인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단풍나무와 화려한 색채의 목단(牧丹)과 장미꽃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던 고향 진주집이라든지, 끝이 보이지 않던 할아버지의 과수원에서 뛰놀던 기억들과 매일 등·하교 길에 지나다니던 남강 주변과 진주성에서 내려다보이던 들녘의 자연들이 어느 사이 나의 핏속으로 스며들어 자연에로의 회귀를 자꾸만 북돋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젊음의 낭만과 자유분방한 사고를 즐겨야 할 대학시절은 데모로 날이 새고 지고 있었다. 학생들이 아니라 사회 변혁을 목쉬도록 고함지르는 거리의 투사들로만 보였고 학생회를 맡을 기회가 있었을 때 거리의 투쟁은 종식되어야 하고 캠퍼스로 돌아와 우리의 대학생활을 살찌게 하자고 부르짖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4월5일 식목일 행사를 한 것이 학생회의 첫 사업이었다. 개나리랑 진달래가 피어있는 히포크라테스 동상 주변에는 시화전이 열리고, 볼룸댄스 교사를 YMCA에서 초빙하여 가을의 ‘함춘 축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무렵 축구 교환경기 차 방한한 일본 와세다대 의대생들에게 요청한 100그루의 벚꽃나무 묘목을 당시 한창 신축 중이었던 대학 병동의 내정(內庭)에 심어 입원환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환하게 해주고 싶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심었던 개나리랑 벚꽃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은 못하고 있지만 삭막하고 메마른 정서에 꽃을 보며 조금이라도 삶의 윤기를 더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한인사회에는 한국 정원을 만들어 보자는 캠페인이 연초부터 조심스레 전개되고 있다. 비칠거리는 경제상황과 9.11 테러사건 후 움츠러든 사람들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는 범동포적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확신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 살 때 정서와 인간정신은 메마르고 고사되어 가리라는 믿음도 있다. 자연을 찾아 나서든지 자연이 우리에게로 오게 할 수도 있는 정원 만들기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다.
그러나 누가 고양이의 방울을 울릴 것인가. 그 누구란 우리 모두가 아닐까? 다 같이 중지를 모아 오랜 세월이 걸리는 어려운 사업일지라도 한 번 해 봄직한 신나는 사업이 아닐까? 우리 모두 출발점의 신호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신호탄을 발사하는 날을 기다려 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