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한국의 최고 명문대학이라는 서울대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흥미로웠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류대학에 다니는 이들도 70% 이상이 전공에 불만을 갖고 열등감을 느낀다는 통계였다.
일단 서울대에 들어가고 보자는 식으로 입학했지만 의대나 법대 등과 같은 인기학과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갖는 불만이 상당했다.
이에 따라 도서관은 사법시험을 비롯한 고시 공부를 하는 비 법대생들로 만원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일류대학 진학과 일류직업으로 국한하는 한국의 교육은 극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을 인생의 낙오자 내지는 불행한 사람으로 양성하고 있다.
어차피 최고 명문대학의 인기학과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데, 사람들을 순위로 매겨서 대다수를 열등한 사람으로 모는 것은 불행을 양산하는 행위이다.
한인들의 이러한 ‘1등주의’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일류대학’을 나와 ‘일류직업’을 가져 ‘일등 신랑감’이나 신부감이 되어야 한다. 이들은 아이도 일류로 낳기 위해 ‘일류 병원’으로 가거나 ‘일류국가’라는 미국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원정출산’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의 이름에 ‘제일XX교회’라는 명칭이 가장 많은 것도 한국인의 이러한 일류의식이 잠재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류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조그마한 개척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은연중 과시하기까지 한다.
몇 년전 한국의 대기업 광고에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거슬렸다. 시리즈로 나간 이 광고는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사람도, 남극점을 밟은 사람도,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도 일등만 기억할 뿐, 2등은 역사에 남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입시지옥과 경쟁사회가 불러오는 숨막히는 긴장이 싫어 미국에 이민온 한인들이 여기에서까지 자녀들을 ‘일류병’으로 몰아넣는 사람들이 많다.
2세들에게 형과 누나로서 상담자 역할을 해주는 ‘한인 멘토쉽 프로그램’(KAMP)에 비쳐진 2세들의 고민은 한결같이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와의 대화단절"이었다.
KAMP의 한 스탭은 "한인부모들은 아이의 가치를 인격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성적표로만 보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자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누구를 사귀고, 어떤 꿈을 키우고 있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보기 보다는 학교에서 보내주는 성적표로만 평가한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성적표를 감추거나 속여서 부모의 질책을 면하려 하고,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늘 분노와 초조감에 시달리는 한인 2세들이 적지 않다.
신문에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우등생들만 보도되기 때문에 한인2세들은 모두가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모범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가정폭력이 쉬쉬하며 숨겨지듯이 문제아들의 문제는 수면 밑에 숨어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생각보다 심각하다.
가끔 미국 학교를 방문했을 때, 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구김살 없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미국 아이들을 보면 한인 2세들이 불쌍해 보인다.
’공부 잘하는 아이’ 보다는 올바로 커서 사회에 기여하며 사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미국에 온 까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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