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미군사학교 유학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휴일이 되면 사복으로 갈아 입고 시내구경과 샤핑을 나갔는데 인종차별이 심한 때라 혹시 누가 무례한 행동을 하여 외국장교들에게 반미감정을 심어주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학교당국이 안내자를 따라 내보냈다.
그때 학교에서 생각해서 차출하여 준 것이 한인2세 하사관이었다. 얼굴은 한인이나 말은 간단한 것 밖에 몰랐으며 거기다 존대어는 전혀 모르니까 “이리와” “내일 여기와 기다려” 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한국말을 제대로 못배워 그러려니 하고 참았지만 하도 기분이 나쁘고 또 그런 정도의 말은 우리가 영어로 하는 편이 낫겠다 생각하여 미국인 안내자로 바꾸어 줄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요즈음 이런 한인 아닌 한인이 우리 한인사회에 양산되고 있다. 나의 맏며느리는 한인인데 그 소생인 열살난 손녀하고는 대화가 잘 안된다. 무어라고 한국말은 하는데 영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15살 고등학생 손자는 옛날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처럼 더듬거리고 힘들게 말하지만 한참 생각해야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손자는 고사하고 자식들의 한국어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중국계나 히스패닉은 몇 대를 지나도 모국어를 곧잘 하는데 한인들은 대체로 그렇지가 못하다. 언젠가 한국일보 오피니언란에서 한국의 뿌리를 지키고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집에서는 반드시 한국어를 써야 한다고 역설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몇대의 세월이 흘러서 나의 후손을 이 땅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있다 하여도 그것은 한인이 아니라 미국인일 것이다.
언젠가 사업상 한 백인을 만났는데 내미는 명함을 보니까 ‘Yamashida’라고 되어 있어서 “이것은 일본 이름이 아니냐” 물으니 4대 조상이 일본에서 왔다고 하였다. 영국계 미국인인 나의 둘째 며느리에게서 얻은 손자들도 장차 같은 질문을 받으리라.
우리는 한국이 살기 어려울 때 보다 풍요한 물질세계를 찾아 이곳에 와 어느 정도의 목적은 이루었다. 그러나 대신 오랜 역사 속에 가꾸어온 우리 고유의 말과 글, 민족의 얼과 정서, 소중히 이어받은 민족의 유산은 모두 잃어 버렸구나 하는 쓸쓸함이 가슴에 밀려오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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