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4시20분(한국시간) 김포발 김해행 아시아나항공. 한국-폴란드전이 이틀이나 남았는데도 앞당겨 격전지로 향하는 20여명의 취재진들 모습에서도, 앞좌석 한 켠을 몽땅 차지한 폴란드 축구협회 임원들의 모습에서도 심상치 않은 부산전투의 의미들이 뭉개 뭉개 솟아올랐다. 40여분쯤뒤 착륙을 앞둔 시간. 스튜어디스이 기내방송도 "…저희 아시아나 항공은 월드컵 열기로 가득찰 항도 부산에 무사히…"라며 월드컵을 팔았고 김해공항을 나서자마자 첫눈에 들어오는 버스정류장 지붕 한쪽 목 좋은 곳은 아예 "(16강도 아닌) 8강으로"라고 쓴 격문으로 가득 찼다. 앞 유리 아래쪽에서 "2002 월드컵"이라고 쓴 가로 1m 세로 20cm 가량의 아크릴 간판을 내붙인 307번 버스가 공항을 떠나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하는 약30분동안 역시 거의 한곳도 월드컵과 관련된 말과 치장을 빼놓은 곳은 없었다. 강서구청 부근에는 강서구민의 이름으로, 구포시장은 구포상가연합회의 이름으로, 그곳을 조금 지난 어느 대형 가구점은 그 가구점의 이름으로…. 적어도 구호로 본 부산은 숫제 월드컵의 불길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산 역시 ‘준비하는 마음만큼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우선 공항-월드컵경기장을 잇는 307번 버스부터가 그랬다. 겉으로 내보인 월드컵경기장행 표시와는 달리 정작 내부의 노선도에는 경기장 표시가 빠져있어 한국어 안내방송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몇몇은 손짓발짓 동원해 일일이 물어본 뒤 내릴 곳에 내릴 수 있었다. 경기장에 가까운 사직동 삼거리의 도로표지판 역시 문제였다. 버스 앞 유리와 도중 안내판에는 기껏 월드컵 경기장(Busan Worldcup Stadium)으로 표기돼 있었으나 목적지에 다 가서 만나는 마지막 삼거리 표지판에서는 종합운동장(Sports Complex)로 돼 있어 한국인에게도 길을 잘못 들지 않았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았다.
게다가 2일 오후 사직동 스테디엄에서 파라과이-남아공전을 관전한 파라과이인 다리오 실바(37)의 경험담은 준비의 손길이 말만큼 꼼꼼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 홍콩 주재 다국적 회사에 근무하는 그는 월요일 오전(3일·LA시간 2일 오후) 지각출근 허락을 받아놓고 부인와 함께 부랴부랴 원정응원을 왔는데 해프타임 휴식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에 갔다가 휴지가 떨어진 걸 발견하고 대경실색했다는 것. 그는 "도리없이 간막이벽을 두들기는 등 SOS사인을 보낸 끝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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