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2월말 태국 수도 방콕. 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 예선 한-태전 취재를 위해 그곳으로 날아간 기자는 말수가 뜸하고 그나마 ‘재미없는 바른 말’뿐인 차범근 당시 감독으로부터 전혀 차범근답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쟤가 감각적인 패스를 탁탁 넣어주는 걸 보면 저도 깜짝깜짝 놀라요. 자기 관리를 잘해서 저대로만 가면 (한참 뜸을 들인 뒤) ‘틀림없이 뿅가는 선수’가 될 거예요."
훈련을 끝내고 저만치 뒤에서 축구화 끈을 풀어헤치며 까마득한 대선배들과 스스럼없이 재잘거리는 고종수를 가리킨 말이었다. 그는 당시 만 19세 몇 개월. 그 해 초 부임한 차 감독이 발탁한 새내기 야심작이었다.
고교졸업 뒤 대학을 건너뛰고 프로무대로 직행한 그는 97년 삼성의 코리안 시리즈 준우승을 이끈 여세를 몰아 태극마크를 달고서도 유감 없이 ‘끼’를 발휘, ‘고졸스타’ ‘X세대 센세이션’ ‘축구천재’ 등 온갖 수식어들이 따라붙었다. 공 차는 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배짱 또한 ‘왔다’였다. 황선홍·홍명보·하석주 등 10년 가량 차이나는 삼촌뻘 토박이 태극전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게임 도중 감히(?) 이들에게 붙어라 빠져라 고함치고 손짓하고, 상대 문전에서 프리킥 찬스가 생기면 제가 차겠다고 볼 주위를 얼씬거리고… 그래서 ‘대학 5학년’이란 또다른 별명이 덧붙여졌다.
98년 월드컵 때도 이 겁없는 스무살 청년은 주로 후반 조커로 기용돼 과감한 슈팅력과 날카로운 패싱력을 선보이며 축구팬들에게 "(첫승·16강이) 이번에도 안됐지만 2002년에는 될 것 같다"는 가장 믿음직한 희망으로 다가섰다.
마침내 대망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약속의 그 청년’은 태극 유니폼 대신 캐주얼 복장으로, 그라운드 대신 중계석을 들락거리고 있다. 한-폴란드전 땐 객원 해설위원이란 어울리지 않는 직함으로 KBS 중계팀에 섞여 있었다. 그러는 자신의 심정도, 그의 발놀림을 보는 대신 입놀림을 들어야 하는 팬들의 마음도 아팠다.
누굴 탓할 건 없다. 온전히 자기 관리 실패 탓이다. 오빠부대가 생겨나고 광고요 청이 쇄도하는 등 속된 말로 ‘붕 뜨면서’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웃자라 몸 관리 마음 관리를 게을리 했기 때문에 걸핏하면 부상에 허덕였고 결국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스물네 살에 불과한 그는 재기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재기의 출발점 역시 충실한 자기 관리말고는 없다. 중계석에 갇혀 엊그제 동료들의 감격적인 첫 승 만들기를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나" 수없이 되뇌었을 그가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추슬러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다시금 그라운드를 휘젓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는 고종수와 비슷한 이유로 떴다가 비슷한 이유로 가라앉은 이동국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부산-정태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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