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세계를 한가족처럼 묶어줄 것이며…”
월드컵의 창시자 줄 리메는 이렇듯 장밋빛 전망과 함께 월드컵 초 깔기에 정열을 바쳤다. 그러나 말처럼 됐을까. 아니다. 축구 덕분에 화합보다는 축구 때문에 갈등이 심화된 경우가 수두룩하다. 한-미전을 앞두고 비등했던 반미감정은 좋은 예다.
그러나 축구 갈등의 백미는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전쟁. 중미의 가난한 두 이웃은 70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권을 놓고 69년 ‘지역고사’에서 맞붙으면서 앙금이 폭발, 2,000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실전을 치렀고 지금까지도 으르렁거리는 이웃이 돼 있다.
줄 리메의 뜻과는 달리 월드컵 시작과 함께 갈등도 시작됐다. 1회 대회(30년)에서 홈팀 우루과이에 2대4로 패한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가 심판매수로 챔피언 트로피를 훔쳤다며 국교단절을 선언해 버린 것.
50년 브라질대회 결승에서 홈팀 브라질이 우루과이에 1대2로 패한 뒤 성난 20만관중의 빅뱅을 우려해 FIFA는 시상식마저 포기해야 했고 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헝가리에 2대4로 패한 브라질 선수들이 깨진 병과 신발을 들고 헝가리 선수단 라커룸까지 난입, 집단 패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거의 모든 선수가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58년 스웨덴 월드컵 때는 이스라엘에 지역예선 출전권이 주어지자 중동은 물론 인도네시아·수단 등 역외 이슬람권 국가들까지 보이콧을 선언해 결국 이스라엘은 대회 때마다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며 지역 예선을 치르는 떠돌이가 됐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앙숙 관계 역시 축구 갈등사의 감초격이다.
94년 미국대회 때는 스토이코비치 사비체비치 미야토비치 등 절정기의 수퍼스타들이 즐비한 유고가 내전을 이유로 국제대회 출전 금지를 당하는 바람에 지구촌 축구팬들은 이들의 묘기를 감상할 기회를 뒤로 미뤄야 했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한동안 잉글랜드가 킥 & 러시를 주특기로 하면 스코틀랜드는 숏패스를 위주로 하고 잉글랜드가 숏패스를 주무기로 하면 북쪽의 이웃은 킥 & 러시로 무장하는 등 고집불통 앙숙 관계를 보였다. 심지어 50년대 양측 초등학교간 경기에 8만관중이 운집했을 정도로 축구만 등장하면 원수로 돌변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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